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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수필집, 수필, 어머니, 딸 본문

읽고 또 읽고/역사

피천득 수필집, 수필, 어머니, 딸

bangla 2017. 6. 2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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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을 분해 능력이 뚜1어난 여자와 알코을 분해 능력이

제로인 선생님과의 기묘한 술자리는 의외로 편안해서 나는

홀짝 홀짝 마냥 마셨나보다그 동안에 선생님은 위로의 말

씀 같은 건 한마디도 안 하셨지만 거나한 취기에 잘 동조해

주셨다양주를 혼자서 반 병쯤 비웠을 때 양주병을 빼앗고

상을 내가시더니 집 구경을 시켜주셨다불필요한 겉치레가

아무것도 없는 썰렁한 집이었다서재만이 아기자기했지만

서재라 부르기엔 책이 너무 없었다 잉그리드 버그만의 사

따님의 이름으로 부른다는 서양인형 그런 것들과 오디

오기기 등외의 책장이 차지한 공간은 넓지 않은 방의 벽면

반쯤밖에 안 됐던 것 같았다당신에게 영향을 끼친지금도

가끔 꺼내보고 싶은 최소한의 책만 소장하고 있다고 하셨

선생님의 현명한 용기가 부러웠다.

   

읽던 글을 멈추고 자기의 과기를 회상하는 일이 있다.

또 과거를 회상하다가 글에서 읽은 장면을 연상히는 적도

있다.

나는 〈아버지의 병환〉이라는 노신의 글을 읽다가 오십

여 년 전 그날을 회상하였다엄마가 위독하시다는 전보를

받고 나는 우리 집 서사 아저씨와 같이 평양 가까이 있는

강서라는 곳으로 떠났다.

나는 차창을 내다보며 울었다아저씨가 니를 달래느라고

에쓰던 것이 생각난다울다가 더 울 수 없으면 엄마 생각을

했다그리고는 또 울었다그러다가 울음이 좀 가라읹았을

때 나는 멀리 어린 송아지가 엄마소 옆에 서 있는 것을 바라

보았다왠지 그 송아지가 몹시 부러웠다기치는 하루 온종

일 달렸다산이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평양은 참 먼 곳

이었다.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수필은 난이요학이요

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

는 숲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수필은 가로수

어진 페이브먼트가 될 수도 있다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청춘 글은 아니요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

어선 사람의 글이며정열이나 심오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

이 아니요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

수필은 흥미는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기지는 아니

한다수필은 미음의 산책이다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

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검거

나 희지 않고 되락하여 추하지 않고언제나 온아우미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빛이거나 진주빛이다.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놓고나는 죽지 않고 돌이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책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유월이 되면 '원숙

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

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시골 약국

   

피씨의 유래

   

   

   

   

맛은 감각적이요멋은 정서적이다.

맛은 적극적이요멋은 은근하다.

맛은 생리를 필요로 하고멋은 교양을 필요로 한다.

맛은 정확성에 있고멋은 파격에 있다.

맛은 그때뿐이요멋은 여운이 있다.

맛은 얕고멋은 깊다.

맛은 현실적이요멋은 이상적이다.

정욕생활은 맛이요플라토닉 사랑은 멋이다.

그러나 맛과 멋은 반대어는 아니다사실 그 어원은 같을

지도 모른다맛있는 것의 반대는 맛없는 것이고멋있는 것

의 반대는 멋없는 것이지 멋과 맛이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

맛과 멋은 리얼과 낭만과 같이 아름다운 조회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맛만 있으면 그만인 사람도 있고맛이 없더라도

엇만 있으면 사는 사람도 있다.

맛은 몸소 체힘을 해야 하지만멋은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맛에 지치기 쉬운 나는 멋을 위하여 살아간다.

   

네 인형 예쁜 것으로 사다 두었다어서 태평양 바다를 건

너 가서 너한테 안기기를 기다리고 있다이름은 '난영'이라

고 부르면 어떨까머리가 금빛이고 눈이 파랗지만한국에

서 살 테니까 한국 이름을 지어주어야지?

아빠가 부탁이 있는데 잘 들어주어.

밥은 천천히 먹고

길은 천천히 걷고

말은 천천히 하고

네 책상 위에 '천천히'라고 써 붙여라.

눈 잠깐만 감아봐요아빠가 인아 줄게,

자눈떠!

   

11 1일 서영이가 사랑히는 아빠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다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다.

서영이는 나의 딸이요나와 뜻이 맞는 친구다또 내가

가장 존경히는 여성이다자존심이 강하고 정서가 풍부하고

두되가 명석하다값싼 센티멘털리즘에 호르지 않는지적

인 양 쁨내지 않는 건강하고 명랑한 소녀다.

버릇이 없을 때가 있지만나이가 좀 들면 괜찮을 것이다.

나는 남들이 술 마시느라고 없앤 시간바둑 두느라고 없앤

시간돈을 버느라고 없앤 시간모든 시간을 서영이와 이야

기 하느라고 보냈다아마 내가 책과 같이 지낸 시간보다도

서영이와 같이 지낸 시간이 더 길었을 것이다그리고 이 시

간은 내가 산 참된 시간이요이름다운 시간이었음은 물론,

내 생에에 가장 행복한 부분이다.

   

나에게 지식을 가르쳐주신 분은 많

그리고 그중에는 나에게 반사적 광영을 갖게 히는 이름

들도 있다그러나 높은 인격을 나에게 보여주신 분은 도산

島山 선생이시다.

내가 상해로 유학을 간 동기의 하나는 그 분을 뵐 수 있으

리라는 기대였었다가졌던 큰 기대에 대하여 환멸을 느끼

지 않은 경힘이 내게 두 번 있다한 번은 금강산을 처음 바

라보았을 때요또 한 번은 도신을 처음 만나 뵌 순간이었

용모 • 풍채 • 음성 이 모든 것이 고아하였다그는 학문

을 많이 하신 분은 아니었지만 예리한 관잘력과 명철한 판

단력을 가지고 계셨다.

그는 숭고하다기에는 너무나 친근감을 주고 근엄하기에

는 너무 인자하였다그의 인격은 위엄으로 니를 억입하지

아니하고 정성으로 니를 품 안에 안아버렸다.

연단에 서신 우아한 그의 풍채우렁차면서 날기롭지 않

고 청아하면서 부드러운 그 음성거기에 자연스러운 몸가

선생은 타고난 웅변가이었다미국 사람들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목소리를 예찬하나 선생의 목소리만은 못 하다고

생각한다.

도산은 혁명가요 민족적 지도자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높은 존재이었다그는 위대하다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상스러운 데가 하나도 없었다거짓말이나 권모술수를 쓰

지 않았다만약에 그런 것들이 정치에 꼭 필요하다면 그 분

은 전혀 정치할 자격이 없는 분이었다.

한번은 거짓말에 대한 나의 질문에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거짓말이 허락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렇게 아니하면 동지들

에게 큰 해가 돌아오게 될 때뿐"이라고 하셨다그는 진실의

화신化身이었다.

그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수백을 해아릴 텐데 한 사람 한

사람이 다같이 자기만을 대하여 주시는 것같이 느꼈다

리고 그는 어린아이들을 끔찍이 사랑하셨다.

   

   

   

   

큰일을 하는 분은 대범하다는 말은 둔한 머리의 소유자가 뱃심으로 해나

간다는 말이다지도자일수록 과학적 정확성과 예술적 정서

를 가져야 한다.

그의 침실 벽에는 장검이 걸려 있었다이는그의 호신

頀身을 위해서가 아니라 용기의 상징으로서 방을 장식하기

위한 것이었다.

1932 6그가 일본 경잘에 체포되어 고국으로 압송된

후에도 그의 작은 화단에는 그가 기꾸던 여름꽃들이 주인의

비운도 모르고 피어 있었다.

내가 병이 나서 누웠을 때 선생은 나를 실어다 상해 요양

원에 입원시기고겨울 아침 일찍이 문병을 오시고는 했다.

그런데 니는 선생님 장례에도 참례치 못했다일경의 감

시가 무서웠던 것이다예수를 모른다고 한 베드로보다도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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