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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esign your brain
김정주 The city, 스테이플러심으로 만든 도시 난다와 나요가 동일인물, 그들에게 난다와 나요는 전혀 다른 존재로 느낌. 나는 하나이지만 또 다른 내가 존재했던 것. The Mythic Scapes Black birds Reverie, Somewhere, 정경자
66개의 투명한 방 핑크 브로젝트 트랜드를 쫓아서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작업을 진행함. 작품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서사가 없음. 나는 작가로서 작품이 굳이 큰 뜻을 담아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음. 김도균 작가.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수학, 독일의 신즉물주의와 연결된 사진 =>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과 묘사를 강조 블로우 없, 백승우 작가. 논리적인 학문도 반드시 어느 한계에 봉착해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예술을 공부하겠노라고 마음먹었습니다. 답을 만들기 보다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채점 위원이 아니라 출제 위원이 되고자 하는 것이지요. 새벽은 마술의 시간이지요. 프랑스에서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선생은 당신이 죽으면 작품을 불태워달라고 하였다는 얘기가 들렸다. 마침 서귀포 경찰서장으로 부임한 강승수 총경이 여러 차례 설득을 하여 후원 단체를 만들어 갤러리를 계속 운영하는 것으로 승낙을 받았다.
김희중, 신작로 딸라 나들이, 1958 대천 해수욕장, 1958 이형록, 강화도 아이들, 1959 공덕동의 아침, 1958 작가들은 절대로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 배종헌, 가지와 꽃, 2006 전연두, 내 사랑 지니, 2002 난다, 발리우드식 군무 2006 권해식?, 빛 흐르다 2007 꽃이 아름다운 건 곧 벼버릴 운명 때문이고, 꽃을 담는 사진이 아름다운 건 절정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5일장 김영수, 장을 보다, 양파, 전라남도 곡성, 2005 배병우, 제주 오름 민병헌, 스노우랜드 2005 고명근, 빌딩 2007 이갑철, 그림자 장흥, 2001 사실 유명한 예술가들 중에는 요절한 천재보다 스스로 역사를 쓰고도 남을 만큼 장수한 사람들이 월등히 많습니다. 그..
가난하고 불쌍한 시인이지만 나는 후회없이 열심히 살고 있다. 사랑이야말로 인생의 행복인 것이다. 나는 가난하고 슬퍼도 행복하다. 그 나의 행복의 결과가 시로 태어난 것이다. 행복, 막걸리, 하나님 나의 행복 천상병 시인은 진정한 의미의 기인이었음. 천상병, 베트남 파병에 대한 기고문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주신 어머니, 내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신 아버지 그리고 내가 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항상 믿으며 격려를 해 준 아내, 이 세 분 앞에 고개 숙여 이 책을 바친다. 삼십 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전통회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을 숱하게 드나들었고 고려불화, 일본회화, 일본 오키요에 판화작품도 많이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고, 그러는 과정에서 소나무를 만나게 된 것 같다. 눈에는 밝고 어두운 것이 다 똑같아 보이지만, 카메라에는 밝고 우두운 곳에 따라서 그러데이션이 생긴다. 밝음과 어둠 사이에 존재하는 이 수많은 그러데이션을 찍으면서 읽어야 한다. 빛을 읽는 데 익숙해..
사실 네 작업이 실었던 게 아니라 포트폴리오가 더 충분해질 때가지 지켜보고 있었지. 대학 졸업 후 사진 한 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게 됐습니다. 어느 분야에서건 역량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이 바꾸지요. 나는 이 분야에서 좀더 역량을 키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진가의 역량은 지속적으로 작업을 생산해 내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사실 네 작업이 싫었던 게 아니라 포트폴리오가 더 충분해질 때가지 지켜보고 있었다… 라고 말해 줘서 위로가 됐죠. 그 당시만 해도 세상을 다 얻은 줄 알랐습니다. 대학 졸업 후 사진 한 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게 됐습니다. 어느 분야에서건 역량있는 사람이 더 많이 바꾸지요. … 사진가의 역량은 지속적으로 작업을 생산해 내는 데 있습니다. 1990년..
혼혈인을 찍은 사진들 30대 에는 35mm 가 조리개 개방치도 좀 더 크고 좋았거든요. 요즘은 피사체와 거리감이 생기는 50mm 가 좋아요.
당시 사진은 지금과 달랐다. 원판 한장찍는데 40여분 걸리고, 햇빛에서도 최소한 2분 이상 노광해야 함. 당나귀아 낙타와 사람 등에 장비를 실어 나름. 사를은 이 남쪽에서, 파리에서처럼 걷는 사람을 촬영하지 않았다. 샤를은 프로방스에서 바람이 모든 움직임을 주도한다는 것을 알았다. 빛까지도 바람에 떠다니는 듯했다. 샤를은 빛과 바람 앞에 사진을 세워두고 그 작은 움직임에 빚어내는 자취를 즐겼다. 묵직한 사진기와 삼발이 덕에 흔들리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샤를은 보여주기도 하지만 감추기도 하는 이미지를 새기고 지우며 프로방스 곳곳을 헤맸다. 샤를은 애당초 돈이 많이 드는 실제 모델4 대신, 보고 그릴 수 있도록 화가들에게 판매할 생각. 목적은 소박했으나 결과는 엉뚱했다. 격찬을 받았다. 이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