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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믿을 것인가, 김형석 본문
어떻게 믿을 것인가, 김형석
우리가 흔히 부르는 무교회주의자들도 또 하나의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본다면 이상할 것도 없고 시비를 가릴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 장점을 본받아 따르면 더 좋을 것이다.
기독교의 나무는 한없이 커서 여러 가지에 많은 열매가 맺게 되어 있다. 그러니 그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성서연구와 실천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공동체 의식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기독교는 인간의 완성이 인간의 구원이 된다고 보고 있다.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최고의 휴머니스트 중의 한 사람은 공자다. 그 공자가 갖고 있었던 인간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이가 그리스도였다. 공자만큼 수고롭고 무거운 짐을 지고 고뇌 속에 산 사람은 없었다. 그 공자에게 '수고롭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다 나에게로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해주리라'고 말한 이는 예수였다. 그리고 공자와 더불어 벌어지고 있는 도덕과 세상의 나라를 신앙과 하늘나라로 이끌어가려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과 사명이다.
그런 뜻에서 기독교는 비 휴머니즘과 반 휴머니즘이 아닌 초 휴머니즘이다. 휴머니즘을 포섭하면서도 초월하는 것이며 그 초월의 길이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길이 아닌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로 상승하는 것이다.
성지를 방문했을 때 내가 발견한 사실은 성지라는 관념에 대한 회의였다. 세계 어디에 가도 이 지역만큼 미신과 돈벌이에 젖어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 지역을 방문하는 비신자들에게 크리스천이 되라고 권하면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가장 비신앙적인 사태들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성지'로 둔갑되어 있었다.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은 기독교라는 공간적 성지를 갖지 않고 오히려 배격하는 신앙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예수는 '너희는 모르는 것을 예배드린다'고 말하면서 예루살렘이나 산 같은 공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왔다고 가르쳤다. 기독교의 신앙은 양심적이고 역사적인 신앙이며, 공간적인 형식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못 박아 준 것이다. 만일 그 뜻을 깨닫는다면 기독교는 성지나 성역 등을 중시하는 공간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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