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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장막 <토미 테니> 본문

읽고 또 읽고/기독교

다윗의 장막 <토미 테니>

bangla 2016. 4. 16.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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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장막 <토미 테니>

   

다윗의 장막은 건물이라기 보다는 사건이었다.

   

하나님의 영광 또는 분명한 임재가 가는 곳에는 어디나 승리와 능력과 축복이 있었다. 친밀감은 축복을 가져오지만 축복을 구한다고 언제나 친밀해지는 것은 아니다.

   

당신의 얼굴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라. 그리고 주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여쭤보라. 대답을 듣는 순간 당신은 전혀 새로운 사람이 것이다.

   

교회가 열매가 없는 근본 원인은 하나님과의 깊이 있는 만남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인생의 분주함이나 안일함이 잠시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감각을 상실하게 해서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감지하지 못하게 한다.

   

당신의 위엄을 지키면서 그분의 임재를 바랄 수는 없다. 당신의 체면을 지키면서 주님의 얼굴을 수는 없다.

   

주님이 이렇게 가까이 오셨는데 그냥 저를 지나치게 수는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갈망합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도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있었다. 어쨌든 하나님은 그날 우리 모두를 모으셔서 우리가 있어야 정확한 장소와 역할로 우리를 인도하셨다.

... 정말 하나님이 나타나시면 당신의 직분이 무엇이든 얼마나 오래 신앙생활을 했든 상관없이 당신은 즉시 회개를 통해 자신을 덮어야 필요를 직감한다.

   

   

하나님의 진리는 우리를 진리의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십일조, 고난, 인내, 연합, 예배...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감당할만한 은혜의 보좌를 세워오지 않았던 것이 원인...

   

예배는 하늘로 열린 문이다.

   

우리는 그분의 은혜가 필요하지만 진리는 감당할 없다.

   

실제로 세상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교회에 있는 우리들 대부분이 실제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기에 감전되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남는 것처럼 분명한 하나님의 임재를 제대로 경험하면 절대 잊을 없다.

   

당신이 전기 스위치를 올렸을 방안에서 어두움이 사라지는 얼마나 걸리는가? 빛의 광양자들과 어둠의 원자들 간에는 아무 전쟁도 일어나지 않는다. 빛이 들어오면 어두움은 깜빡하는 것보다 빨리 사라져 버린다.

   

분명한 하나님의 임재를 모셔옴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켜는 것보다 영적 전쟁을 치르는 좋은 방법은 없다.

   

가장 높은 차원의 예배는 하나님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다. 주의 얼굴은 주의 은혜를 의미한다.

   

우리는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법을 배웠지만 하나님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법은 모른다.

동안 우리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기술을 익히고 완성시키느라 하나님을 즐겁게 드리는 기술을 잃어버렸다

   

하나님의 손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지만 하나님의 얼굴은 우리의 깊은 갈망을 만족시킨다. 그분의 얼굴을 바라볼 우리는 비로소 인생의 목적을 알게 되고 그분의 사랑스런 눈빛에서 나오는 은혜를 누리며 그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비교할 없는 입맞춤을 경험한다.

   

값싼 영적 감동을 향한 무절제한 갈증은 영적 집착을 초래한다.

   

하나님은 재능보다 인격에 마음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에게 가장 유혹은 회개하는 마음대신 평정심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다.

주님의 얼굴을 구하려면 당신의 체면을 포기하라. 주님의 신성을 사모하려면 당신의 명성을 내려 놓으라.

   

우리는 십자가를 살균처리하고 헌신의 대가를 감소시킨다.

주님은 자신의 체면을 포기하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체면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우리가 간과하는 점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예배는 그분의 영역이고 말씀은 우리의 영역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예배를 놓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드릴 있는 최선의 영역을 놓치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릴 영역은 이기적으로 빼먹고 가려운 귀를 즐겁게 영역에만 나타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벗고 찾으시는 유일한 대상은 예배자 들이다.

   

예배는 모든 창조 세계 가운데 가지 출처에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출처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우리의 예배는 사람의 의지라는 암반 밑에 숨겨져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를 깨뜨리고 암반을 옮기는 분이 아니다.

   

주님과 대화했을 뿐인데 그녀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주님을 예배하며 대면했을 뿐인데 마을 사람들이 그녀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부흥이 일어나면 하나님이 지역에 임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제어할 수도 수도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되어 도시 한복판에 흘러가며 위의 모든 것을 휩쓰는 것을 보고 싶다.

   

교회는 하나님의 목적을 잉태하고 있다.

   

   

지아의 깨어진 그릇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담을 있다.

   

다윗의 장막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이 것은 휘장이 없는 친밀함의 예배 때문이었다.

   

주님을 발견한다면 절대 절대 절대 놓치지 말게.

   

다신 머리에 손을 던지는 것과 당신의 마음속세 하나님의 손가락이 말씀을 새기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그들이 지속적으로 열려있는 하늘의 유익을 누릴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문에 서서 문을 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문을 발견했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우리의 게으름이 정반대 현상으로 지옥을 열고 천국을 닫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 지향적이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결정들은 교회를 영적 파산으로 몰아가고 있으며 천국의 창들을 닫아버리고 있다.

   

당신은 앞으로 계속 오늘이나 다름없이 살겠는가? 아니면 절름발이가 되어 다니겠는가?

   

당신이 분명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기를 원한다고 말씀 드리라. 그분의 손에서 주어지는 축복은 당신이 가장 갈망하는 선물이 아니라고 말씀 드리라. 그리고 당신의 얼굴을 돌려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보라.

   

나는 그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불태울 뿐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불에 타는 나를 보러 오는 것이죠 (요한 웨슬리)

   

영원이 우리의 작은 시간 세계 속에 방문하면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의 비좁은 공간을 가득 채우게 된다. 그래서 3시간이 마치 3분처럼 느껴지고 우리는 그분을 예배하며 그분의 임재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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