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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필립 얀시, 임재, 신앙, 가족, 공동체, 장애인, 페리기우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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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필립 얀시, 임재, 신앙, 가족, 공동체, 장애인, 페리기우스

bangla 2016. 4. 1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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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가하신 말씀과 관례를 벗어나고서도 의미 있고 안전한 삶을 추구하려는 태도, 주말이면 기분전환 삼아 나돌아 다니고 가끔씩은 성적인 즐거움도 맛보지만, 믿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는 일만큼은 부담스러워하는 태도. 이러한 삶의 삽식을 일러 통침 '종교' 한다. 이것은 역적인 삶이 아니라 종교생활이다. 물론 이와 같은 종교가 전적으로 하나님 없는 삶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종교생활에 계신 하나님은 대체로 하나님의 배경으로, 우리가 필요에 따라 뽑아 있는 자원으로 취급되는 듯하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내가 근원적으로 대면해야 분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내게 필요한 어떤 힘과 생각을 제공해주는 존재로 취급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 모두는 같은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을 모두 인정한다 해도 끝내는 양보할 없는 것이 있다. 당신께서 뜻하시는 방식으로 당신께서 원하시는 시간과 장소에 임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응답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참된 생명이 없다.

   

홀로 떨어진 고고한 영혼은... 홀로 타는 석탄과 같다. 불길은 이제 식는 일만 남았다. 이상 뜨거워지지 않을 것이다 - Saint John of the Cross

   

예전에 나는 말하자면 똑똑한 체하는 소비자의 태도록 교회를 대했다. 무슨 물건이든 앞에 내놓아라, 정확시 감식하여 값을 매기리라 하며. 나는 예배를 차례의 공연으로 간주했다.

... 예배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구경하는 관람객이다.

   

예배란 집주인이 누구인지 기억하는 행위.

   

지도자들이 공동체로 사는 방식부터 먼저 결정하고, 테두리 안에서 하나씩 갈등을 풀어갈 , 평화는 자연스럽게 온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러한 노력들이 힘과 자원의 소모로 생각될 있따. 그렇지만 나느 거기서 정확히 정반대의 모습을 보았다. 사랑은 아무리 나누어도 줄지 않는다. 나눌수록 풍성해지는 사랑, 그것이 믿음의 역설이다.

   

세상에서 교회만이 그를 뜨내기 아닌 든든한 식구로 받아들였다.

   

혼자서는 없는 것이 있다. 하나는 결혼이고,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투르니에

   

교회란 공히 신비와 혼란이라는 부분으로 구성된다.

   

이상한 일이지만, 내가 그토록 증오하던 알콜중독 때문에 나는 오히려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었네. 하나님이 술을 이용해서 나를 되찾은 같더군. 그래서 나는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없음을 알지. 나는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술과 싸울 있다네. 글쎄, 그런 뜻에서라면 알콜 중독도 나를 구원하는데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 같은 중독자를 부르신 것은 다른 성도들에게, 그분을 의지하는 무엇인지, 땅에서 그분의 공동체를 의지하는 무엇인지 가르치라고 하는 아니겠나.

   

내게는 이제 죄가 필요없다. 이제부터는 죄가 아니라 죄인을 찾아다니겠다.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말을 있는 곳이 교회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같은 부류였다. 나와 일정한 교분이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학력이나 나이, 가치관이 비슷하다.... 하지만 나는 지식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세상에 공존한다는 것을 알지만,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북적대는 곳에는 좀처럼 나다니지 않는다.

   

교회는 단순히 화해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기만 하는 장소는 아니다. 신문사나 방송국 전화국은 소식을 받아 전해 주는 곳이지만 교회는 결코 그래서는 된다. 교회는 단순히 말씀 때문에 몰려드는 장소는 아니다. 동창회는 학교 때문에 모이고, 극장의 관객은 영화의 명성 때문에 몰려들지만 교회는 결코 그래서는 된다. 세상의 갑남을녀가 모여 전혀 새로운 사회적 완정체를 이루는 ,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일이며 역사에 의미를 세우는 일이다....John Howard Yoder

   

이교도들은 여타 종교는 뭔가 대중적인데, 그것은 그들의 종교가 외형적인 측면에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 종교는 교육받은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고도록 지적인 종교는 물론 배운 자들에게는 좀더 적합하겠니잠, 일반 대중들에게는 별다른 쓸모가 없다. 그리스도교만이 일반 대중과 지식인 양자에게 공히 환영 받는 종교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외형과 내부 모두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 일반 대중에게는 안으로 들어가는 깊이를, 지식을 자랑하는 배운 자들에게는 밖으로 나가는 겸손함을 가르친다. 모습이 없다면 그리스도교는 결코 완벽한 종교가 아니다. 일반대중은 형식에 깃든 내용을 이해해야 하고, 배운 자들은 그들의 내용을 형식에 복속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 파스칼

   

아이는 태어나느 자체로 가족의 권리를 얻는다. 성취력이 떨어지는 아이라해서 밖으로 쫓겨나는 일은 없다. 아니 그와는 반대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파서 누워 있기만 하는 아이가 나머지 건강한 형제자매들보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누구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족이란, 단순히 싫고 좋고를 떠나, 무관심과 경쟁은 물론 증오조차 공존하는 세계에서 어떻게 사랑이 존재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곳이다' - John Updike

   

내가 가면 받아주지 않을 없는 -Robert Frost

   

자식중 누구를 사랑하냐고요? 아픈 자식이 나을 때까지는 자식을, 나간 자식이 돌아올때까지는 자식을 나는 사랑합니다. -웨슬리의 어머니.

   

결코 함께 살고 싶지 않은 사람과 언제나 같이 사는 - 나우웬

   

교회는 모두가 용서받았다는 기쁜 소식을 인해,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우리의 승리는 확정적이라는 위대한 복음을 인해 서로 축하하고 감사하는 곳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신다. 대단한 모험이 아니신가? 우리에게도 대단한 모험이 아닌가?

   

바울은 누구에게 고전 12-14장에 이른 장엄하고 아름다운 편지를 썼는가? 우상숭배하는 자들, 간음하느 자들, 험당하는 자들이 모인 고린도 교인들에게 쓰지 않았는가?

   

쇠렌 키에르케고르 : "우리는 멀리를 향해 수있습니다. " 그리고는 집거위들은 다시 일렬로 서서 뒤뚱러리면서 집으로 간다. 그들은 여전히 걸어서 간다.

   

교회는 바로 '좌절을 통해서 우리를 거룩함에 이르게 한다' -Richard Rohr

   

"기다려 주는 사람 없이는 누구도 없습니다. 고단하고 여행에세 돌아오는 모든 사람은, 누군가 역이나 공항에 나와 자신을 기다리고 있기를 희망합니다. 모든 사람은, 집에 남아 자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격었던 고통과 기쁨의순간들을 이야기해 주고 싶어합니다." - 나우웬

   

장애자들을 위해 헌신한 당신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생애 처음으로 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낌.

-이전 같으면 결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일을 하고 있다.

-이곳에 지내는 동안 나는 장애인의 사랑을 얻었다. 나는 이제 이상 사람을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까이 지내보면 안다.

-나는 이제 인간의 고통에 대해 깊이 반응하게 되었다. 그것이 안에서 남을 돕고자 하는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런 일의 의미와 목적을 새로이 깨달았다. 나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인내하는 법을, 보잘것 없는 성취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배웠다.

-장애인들을 보면서 나를 보았다.

- 관대해졌다. 사소한 문제들은 이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불완전한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는 마음을 배웠다. 무엇보다도 나는 삶의 사소한 기쁨에 감사하는 마음을 배웠다. 미움이나 힘보다 사랑이 많은 것을 성취할 있다고 가르쳐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리스도인들의 경향이란 대개 이론적으로는 어거스틴을 옳게 여기지만 실제적으로는 펠리기우스를 따라한다. 그런 같지만 자신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가치를 두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한다는 얘기다. 위원회 같은 위신 세우는 모임에 참여하고, 죄책감에 대한 보상 심리로 오랫동안 기도하며,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고쳐주지 못해 안달한다면 확실히 헌신적인 노력이기는 것이다.

   

타인을 돌볼 있도록 나를 돌보라. 남을 돕겠다고 피를 흘리되 죽을 정도로 흘리는 마음이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

   

우리는 죄의식이 사라졌다고 깨닫는 날이 것입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만이 구원하신다고 깨닫는 날이 것입니다. 날에야 우리는 기꺼운 마음으로 섬기고 봉사합니다. 날에게 우리는 진실로 겸손한 삶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과 감사의 영혼을 통해서만 최상으로 일하신다. - 나우웬

   

다른 사람들의 십자가는 십자가가 아니다.

   

하나님과 삶을 혼동하지 않는 , 나는 이것을 오래 전부터, 특별히 이번 비극을 통해서는 더더욱 절실하게 배웠습니다. 나는 금욕주의자가 아닙니다. 내게 닥친 비극 앞에서 나는 결코 초연할 없습니다. 나도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창망하여 넋을 놓고 잇습니다. 삶의 부조리, 불공평을 나는 있는 대로 저주합니다. 나는 분노합니다. 나느 피통합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도 내게 닥친 비극을 보시며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나와 같이 분노와 비탄에 잠기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내게 닥친 일로 하나님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 Disappoinment with God, 더글러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피조물들에게 위임할 있는 일들은 결코 당신이 나서서 하지 않는 듯하다. 그분은 당신이 깜빡여 완벽하게 있는 일을, 느리더라도, 실수하며 그르치더라도 우리더러 하라고 말씀하신다. -CS루이스

   

연애의 낭만적 감정이란 결국 어떤 깨달음으로 귀착하는가? 결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비로소 사랑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라는 인식 아닌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교회란 비로소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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