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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밥 먹고 밥이 되어,최일도 본문

읽고 또 읽고/자기계발

이 밥 먹고 밥이 되어,최일도

bangla 2016. 4. 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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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주가 넥타이를 잡고 두 시간을 끌고 다님… 그래서 로만 칼라로…

   

우리는 이곳 저곳에서 모아 온 옷과 형편 닿는 대로 마련한 옷들을 무의탁 노인과 노숙자 분들께 나누어 드리고 있습니다. 그 옷들을 깨끗하게 차려입고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저절로 흐뭇해집니다.

   

진짜 복음주의는 복음대로 산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삶처럼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대로 사는 삶이란 이런 의미에서 급진적이란 말입니다.

   

억만 씨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2억만 벌어 잘 먹고 잘 살라고 부모님이 주어 주신 이름인데, 수중에는 언제나 2백 원도 없어서 늘 무료 식사를 즐기십니다.

수 차례 갱생원을 드나들고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면서 그는 이렇게 오늘도 살아 있음! 살아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를 항상 감격시키는 단골 손님이었습니다.

   

원래 죄 많은 인생은 죽고 싶어도 못 죽어유. 지가 이대로 죽으믄 하나님이 섭섭해서 어떡 해유. 하나님이 이 죄 많은 인생 오래 살게 하시는 이유가 어딘가 있지 않것서유?

   

청량리 십자가

   

고속도로는 밀릴 대로 밀려 있었고

개미 걸음으로 서울 청량리에 도착한 때는 늦을 대로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친구는 차를 청량리 뒷골목으로 몰았습니다.

친구는 일부러 그쪽 길을 택했습니다.

뭘 모르는 저에게 세상 구경을 시켜 주고 싶었던 것이죠.

정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색색의 불빛과 반라의 여인들

청량리는 딴 세상이었습니다.

구경 많이 하라는 듯 친구는 차를 천천히 몰았습니다.

저들은 누구고

저 방 안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고

이 세계는 대체 무언고

짧은 시간이지만 생각이 많았었죠.

골목 끝을 막 빠져 나올 때였습니다.

친구에게 소리를 쳤습니다.

"한 번 더 돌자!"

뜻 밖의 주문에 이번에 친구가 당황했습니다.

짙은 화장에 가슴이 거의 드러난 한 아가씨의 목에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 있는 걸 제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불빛에 반짝이는 십자가가 제 눈에 또렷하게 들어왔습니다.

한 바퀴 다시 돌아왔을 때도

십자가는 아가씨의 가슴 사이에

그대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부끄러움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 그때 그 아가씨가

십자가 목걸이를 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았는지

왜 청량리에서 빛나는 목걸이를

어색한 불협화음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여겼는지

그런 제가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 방들이야말로 십자가가 있어야 할 곳,

그 가슴이야말로 십자가를 필요로 하는 곳,

십자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저 자신이 부끄러움으로 인정해야 했습니다.

   

처가가 대전에 있는데, 그곳에 있는 학교 직장까지 다 알아보고 '이제는 떠나야지' 하며 결정적으로 저와 헤어지려고 했는데, 어머니께서 먼저 집을 나가신 겁니다. 어머니께서 버린 자식을 나마저 버리면 어떡하나 하고 불쌍해서 남아 줬답니다. 하긴 그때 남길 잘했지요. 그때 떠나갔으면 서로 상처밖에 남는 것이 더 있었겠습니까? 또 지급은 어딜 가거나 김연수, 김연수 하며 칭찬의 주인공이 되는데, 그때 떠나갔더라면 피차가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산아, 난 널 사랑해, 난 잠시도 널 잊어 본 적이 없어. 넌 내 아들이야. 넌 내 기쁨이야.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랬더니 아이가 하는 말이, "아빠, 그 얘기는 하나님이 예수님한테 한 말이야."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 가지고"응? 무슨 소리야?"라고 했더니 지난 주일날 이 동네 교횔 갔는데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쳐 주었다는 겁니다.

   

어머니에게 할 말은 어머니에게, 아이에게 할 말은 아이에게 직접 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직접 하지 않고 꼭 말을 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이라는 것이 한 바퀴 돌고 나면 전혀 다른 얘기가 되어 더 큰 문제덩어리로 되돌아오기 십상입니다. -직접, 솔직히 이야기하라.

   

양피지에 성경을 쓰던 서기관들은 잘 때는 저처럼 이 양피지를 둘둘 말아 베고 잤다는 것 아닙니까?

   

누가 경건합니까? 라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경건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야 제대로 된 질문인 것입니다.

   

날 따라서 하십시오. 하고 치약을 짜셔 손바닥에 발랐습니다. 그걸 머리에 문지르면 5년가 머리 한 번도 안감은 것처럼 되거든요. 그리고 종이를 태워서 얼굴에 바르고, 행려자가 벗어 놓고 간 옷을 입고 거리에 나갔습니다. 그렇게 길거리에서 이틀을 잤습니다.

   

"아니 우리 공동체 사람한테 말씀하시지, 그걸 맨손으로 뚫으셨어요?"

"목사님, 장로가 뭡니까. 궂은 일 하는 게 장로지요. 죄송합니다. 조금 더 빨리 했어야 하는데."

   

참 섬김은 말없이 지속적으로 섬긴다는 겁니다.

섬기는 공동체는 기는 공동체입니다. 섬 자만 빼놓으면 기는 공동체가 됩니다. 기는 사람들이 있어야 섬기는 공동체가 됩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습디다. 어지러웠습니다. 그 순간에 저는 가까스로 저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생긴 틈새 덕분입니다.

   

부자는 나사로에게 음식만 주었지. 인격적으로 그를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이유라면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도 나사로를 인격체로 대해 준 적이 없습니다.

   

돈 많은 부자 교회는 참으로 여기저기 많은데, 왜 하필 가장 돈 없는 교회를 통해 이 일을 이루려고 하셨을까요? 돈 많은 교회가 하면 돈이 했다고 하겠지만, 다일공동체가 하면 믿음으로 했다고 할 것이고, 하나님이 친히 자기 백성을 위해 일하셨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예수 팔지 않겠습니다. 말로는 사랑을 전하지 않겠습니다. 세 치의 혀로만 한 몫 보려는 예수쟁이는 되지 않겠습니다.

   

방언이 안되서 사람들이 시험에 빠질까 봐. 헬라어로 주기도문 기도… 영빨 할머니가 자기가 그걸 번역해주겠다고 … "여자를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자를 쫓아버리고… 전도사님은 그저 여자 조심하고 돈만 조심하면 큰 목사 되실 줄로 믿습니다."

"권사님, 그거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녜욧!"

…..

저는 기도실에 혼자 남아 십자가를 바라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님, 제가 죽는 날까지 거짓 없는 기도 하게 하소서. 정직한 기도하게 하소서. 바른 기도하게 하소서. 오늘 하나님 앞에 결단합니다. 제게 일만 마디 방언을 주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단 한 마디, 사랑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그 한 마디 정직하게 고백하며 살게 하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더욱 사랑합니다."

   

밥 그릇이 10년 넘게 쌓이면서야 겨우 깨달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행동하기 앞서 그들과 함께 있기가 더욱 필요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회의 공동체성이란 날마다 경이로운 모험입니다. 이 모험은 결국 내적 해방으로 사랑하고 사랑 받는 참 자유로 이어집니다.

   

불교는 산 속에 있으니 멀어서 안 보이고, 천주교는 워낙 견고한 교권이 버티고 있으니 그 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기저기서 교회의 문제가 그렇게 많이 대두되는 것도 실은 바로 옆집 일처럼 가깝고 잘 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내가 들고 온 밥상 위의 밥그릇에 담겨 있는 밥을 보니까 보통 밥이 아닙니다. 밥알 하나하나가 방긋방긋 웃는 것 같습니다. 그때야 깨달았습니다. "아, 이 밥이 생명의 양식이구나. 주님이 생명의 양식이 되어 오셨다더니, 이 밥을 먹고 내가 지금껏 살았구나."

밥이 말하는 게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밥이 춤추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어서 절 드시고 생명의 역사를 계속 이어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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