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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주은 본문

읽고 또 읽고/예술

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주은

bangla 2016. 3.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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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면 오히려 경계를 허무는 일에 주력한다. 계속해서 선 안에 있기만을 고집하고 선 밖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어린아이 같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러나 경계를 넘나든다고 해서 '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래도록 쌓은 내공 덕분에 줄을 긋지 않고도 자기 영역을 확실히 지킬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어른다운 어른이 되는 것이다.

   

죽은 피는 더 이상 분노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잊어버린 과거는 죽은 피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결국 최고의 복수란, 용서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대한 완전한 망각이다.

   

개는 후회하지 않는다.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소통할 줄 아는 현명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은 준 것 만큼 되돌려 받지 않더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인간이 미처 깨닫지 못한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동물이기도 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랑만큼은 개처럼 해야 한다. 사랑하라. 개처럼 솔직하고 단순하게.

   

몸체의 모양이 자궁처럼 생긴 만돌린은 생명을 잉태하고 생산하는 창조력을 지닌 악기로 여겨졌고, 덕분에 오래도록 예술가를 상징하는 소재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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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옆에 호리병도 보인다. 호리병은 지혜의 샘을 담아두는 곳이다. 지금은 다 마셔버려 비어 있지만, 밤새도록 촉촉한 이슬이 내려 그 안에 싱그러운 물을 가득 채워줄 것이다.

   

한 순간 한 순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한 의미가 된다. 생은 유한해서 덧없는 것이 아니라, 삶의 소중함을 모르는 채 엉뚱한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쓰기 때문에 덧없는 것이다.

   

중독은 이렇듯 자신을 가두는 것이다. 현실을 망각할 수 있어 좋았던 한나절의 꿈은 점점 깨어날 수 없는 악몽으로 변하여 스스로를 가두고 만다. 잊고 싶은 건 현실이었는데, 정작 잃어버린 것은 나 자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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