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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철학자들의 고백, 켈리 제임스 클락

bangla 2016. 4. 16.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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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이성을 폐기하지 않으며 이성 또한 신앙을 제거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앙은 이성을 온전케 하고 이성은 신앙의 눈을 밝혀준다. 이 철학자들이 거의 공통적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은 신앙이 이들의 인격을 다듬어 주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다.

   

중세인들은 죄가 우리의 의지는 손상시켰지만 이성은 손상시키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개혁주의는 죄가 이성도 손상시켰다고 말한다. 낭만주의는 죄가 테크놀로지에는 영향을 미치지만 예술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개혁주의자는 예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전통은 죄와 죄의 결과를 전범위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신앙의 영역에 대해서도 전범위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신앙은 우리 존재의 부록이 아니며, 신학적인 덕목, 즉 여러 덕목 중 하나가 아니다.

   

의미 없고 믿음 없는

낯선 전도자와 그의 교회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지 말라,

그들의 회당은

헨리 8세의 불알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니,

-아일랜드 시

   

돌아보건대 나의 삶은 우연한 만남과 우연한 독서들이 어떤 흥미로운 패턴을 이루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우연은 아무것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바통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기셨고, 그 제자들은 후대의 사람들과 뒤따라오는 세대에 바통을 건네 주었으며, 이들의 충성으로 우리가 기독교인으로 살게 되었다. 나는 내게 바통을 건네 준 사람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만약 그들이 도중에 바통을 떨어뜨렸다면 나는 기독교인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카리스와 나는 1962년 결혼했고 그 결혼생활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자녀 세을 키웠다. 그녀는 나의 가장 친근한 벗이며 우리는 서로에게 충실했다. 우리는 1962년 때보다 지금 서로를 더 사랑한다.

   

코치 일을 하면서 내게는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첫째는 가능한 한 최고의 코치가 되는 것이었고, 둘째는 극한 상황 가운데서도 기독교인답게 사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인생의 심층부에서도 의미 있게 울려 퍼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때때로 코치로서, 사람으로서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한 부족한 나에게 선한 영향을 받았노라고 고백하는 사람들과 나와 기꺼이 사귀어 준 벗을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할 뿐이다.

   

겸손이란 보이지 않는 덕이다. 그렇지만 겸손은 덕 중의 최고의 덕이다. 가장 형이상학적이기 때문이다. 겸손은 우리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한다. 그런데도 세계와 철학자들에게 가장 인색하게 인정받는 덕이다… 이 덕은 종교의 덕과 자주 혼동되지만 그보다 훨씬 더 고상한 덕이다.

   

누구라도 그랬겠지만 나는 우선 이 고결한 시의 장엄한 아름다움에 감명 받았다. 그렇지만 실망스럽게도 나는 거기에서 나를 위한 어떤 메시지도 발견할 수 없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거기에는 그 나름의 메시지가 있었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말하기를 문제가 되는 것은 행동 자체가 아니라 행동을 취하는 정신이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다시 우주의 현 질서에 대한 단순한 설명이 가능하다. 즉 하나님이 양성자와 전자들을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만일 극동 지역에서 발생한 종교들이 신적 계시에 근거한 초자연적 지식의 권리를 갖지 못한다면 그 종교들은 종교의 가면을 쓴 이론철학 내지 도덕철학이다. 그것들이 의사 종교라고 하더라도 다신론적이거나 무신론적이라면 그 철학과 교리들은 철학적 신학의 진리들과 충돌하게 되며 따라서 거절되어야 한다. 그래서 서구에서 일어난 일신론적인 세 가지 계시종교만 남게 되는데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가 그것이다. 이 세 종교는 그 진리 주장의 내용에서 서로 충돌한다. 만일 하나가 다른 것보다 나은 진리 권리를 갖는다면 다른 둘은 부분적으로만 그 진리를 공유할 것이다. 이 세 종교는 각각 철학적 신학이 긍정하는 진리들과 양립하겠지만 이 셋이 경험과학과 역사의 확립된 진리들과 똑같은 정도로 양립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직 기독교에서만 하나님은 초월적이며 동시에 내재적이다. 우주의 영원한 창조주인 동시에 세상에 와서 인류를 구원하는 분이며, 우주에 내재하는 영이며, 전능하며 전지한 분이다. 물론 이것은 삼위일체의 신비이다.

   

언어가 인간에게 주어진 까닭은 자신을 생각을 숨기는 데 쓰이기 위함이다. - 탈레랑

   

사람들이 범하는 많은 유형의 실패들 중에 가장 슬픈 것은 상상력의 실패다. 상상력의 가장 중대한 실패들 중 하나는 진심으로 열망할 만한 가치가 있는 하나님의 개념, 그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야 말로 비탄에 빠질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개념을 어떻게도 품어 보지 못하는 상상력의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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