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esign your brain

헌신의기쁨(존화이트)글쓰기,고난,영광,예술,실수,공산주의,고난 본문

읽고 또 읽고/기독교

헌신의기쁨(존화이트)글쓰기,고난,영광,예술,실수,공산주의,고난

bangla 2016. 4. 16. 14:17
728x90

헌신의기쁨(존화이트)글쓰기,고난,영광,예술,실수,공산주의,고난

   

   

글을 쓰는 사람에는 부류가 있음.. 사실을 조사하여 이를 호소력 있게 논리적으로 배치하는 사람과, 같은 사실이라도 체험을 근거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후자에 속한 사람이야 말로 진실을 체험하는 사람이며, 진실과 진지한 투쟁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나는 번째 부류에 들고 싶었다.

   

나는 거의 언제나 무엇이든 마음 자세가 되어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전보다 어려울지 모른다. 나는 가끔 반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젊었을 때보다 열심히 배우고자 하며, 많은 희망을 품고 많은 추진력을 발휘한다.

나는 까닭을 안다. 그것은 헌신과 관련이 있다. 헌신이란, 그것이 진정한 것이라면 신체가 쇠약해지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노쇠의 과정을 뛰어넘을 있는 능력을 발휘한다. 나이가 반드시 무관심과 노쇠로 빠져드는 지루한 내리막길이 되어야 까닭은 없다. 가만히 누워서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을 거부하도록 만드는 무엇인가가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예수님의 목표는 아버지의 뜻을 아는 것과 뜻을 행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목표가 있었던 것은, 그분이 하나님을 사랑하신 동시에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결과, 그리스도는 때이른 죽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사셨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가운데 인생의 한창때에 죽으실 것이었다.

   

성령님이 ' 눈을 바라보라'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게 혼자서 조작해 생각이 아니라는 어떻게 알겠는가?'하고 생각했다.

잠시 동안 아무런 대답이 없다가 같은 명령이 되풀이 되었다. ' 눈을 바라보라'

내가 눈을 바라보자, 좌석 등받이 너머에서 나를 내려다보시는 그분의 부드러운 사랑의 눈길이 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어었다. 나는 그토록 강력한 사랑을 경험해 일이 없었다.... 그분의 눈은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고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 위해 이런 일을 당할 있어서 기쁘구나"

   

시각 예술품에 대한 청교도의 반박이 모두 정당하는 것이었는지는 없다. 내가 이러한 문제를 제기 하는 것이 헌신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기독교 음악, 찬송가, 기독교 소설 등을 제외한 모든 예술 표현을 수상하게 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부지불식간에 영성을 문화적'예술적 빈곤과 연결해서 측정하는데,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러나 즐거움이 결코 정욕이 되어서는 않된다. 정욕은 즐거움 자체가 목적이 되거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보다 중요해질 생겨나다.

   

내가 내린 결정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좋아한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내가 내린 결정이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에 대해 무언가를 말해 주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것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미국의 공산주의자가 자신의 약혼자에게 약혼을 파기하며 편지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여러 가지 재난으로 고난을 겪소, 총에 맞기도 하고, 교수형을 당하기도 하며, 린치에 처하기도 하고, 엄벌을 받기도 하며, 투옥당하고, 비방을 받으며, 일터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오. 온갖 방법으로 수난을 당하는 그런 사람들이오. 우리 중에는 죽은 사람도 있고 감옥에 갇힌 살마도 있소, 우리는 궁핍하게 살고 있소, 우리는 것중에서 사는 반드시 필요한 것을 나머지 돈을 모두 당에 바치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자주 영화관이나 연주회에 시간도 없고 돈도 없소. 아름다움 집과 차를 돈도 없소. 사람들은 우리를 광신자라고 부르오. 그렇소 우리는 정말 광신자들이오. 우리의 삶은 오직 가지 궁극적인 것의 지배를 받소. 그것은 바로 세계 공산화를 위한 투쟁이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돈을 주고 없는 인생 철학을 갖고 있소.

우리는 뭔과 목숨을 만한 대의 명분을 가지고 있소. 인생의 특별한 목표를 가지고 있소. 우리는 인류라는 거대한 강물 속에 개인의 하찮은 정체성을 던져 버린다오. 그리고 개인 생활이 고되다 할지라도 당에 복종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자아가 상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풍성한 보상을 받는다오. 비록 매우 작은 방식이라고 할지라도, 우리 모두가 인류를 위해 새롭고 좀더 나은 무언가에 기여한다는 생각을 하면 말이오.

내가 진심으로 헌신하고 있는 것은 바로 공산중의의 대의 명분이오. 공산주의의 대의 명분은 나의 생명, 사업, 종교, 취미, 애인, 아내, 여왕, 낙과 즐거움이오. 낮에는 공산주의의 대의 명분을 일하고 밤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꿈을 꾼다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더욱더 공산주의의 대의 명분에 사로잡히게 되오. 그러므로 삶에 생명을 불어넣고 삶을 지배하는 힘과 관련되지 않는다면, 나는 그런 친구나 연인과는 사귈 없으며 대화조차 나눌 없소. 나는 사람과 책과 사상과 행위를 그것들이 공산주의의 대의 명분에 끼치는 영향과 공산주의의 대의 명분에 대해 취하는 태도에 따라 평가하고 있소. 나는 이미 사상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도 갔다 적이 있소.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죽을 각오가 되어 있소.

   

내가 내린 결정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적어도 부분적으로 그것은 자신의 이득 때문에 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말을 그대로 믿어 주셨으며 나로 하여금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말을 그대로 믿어 주셨으며 나로 하여금 거듭 결정을 상기하도록 해주셨다. 당시에는 우리 사이의 계약이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삶을 예수님께 맡긴 이상 문제에 대해 이상 관여할 것이 없으며, 자동적으로 하나님이 나의 삶을 주관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삶이 하나님의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리스도는, 내가 스스로 자유롭게 되기를 원했던 것보다도 훨씬 나를 자유롭게 하셨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처럼 나는 그분에게 빚닌 것을 갚지 못한 적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그분은 내가 내린 수많은 작은 결정 가운데서 어떻게 자유를 발견할 있는지 가르쳐 주시면서 나를 언제나 따라다니셨다.

   

진리는 인격이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신다. 예수님은 그분이 우리 인간들을 위해 계획한 것이 무엇인지을 알고 계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참된 자유가 어디에 있는지 아신다. 그리고 무한히 인내하시면서 우리에게 하나씩 하나씩 자유롭게 되는 법을 가르쳐 주신다.

   

비행기... 남미로 가는 비행기 저자와 아내의 일행이 다른 비행기로... 아내가 비행기가 사고가 같은 예감이...

"너는 나를 신회할 수가 없느냐?"

", 주님을 믿습니다. 그들을 내게로 되돌려보내 주겠다고 약속만 하신다면"

침묵

그러고는 "내가 그렇게 약속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네게 되돌려 보내주지 않는다면, 이제 나를 신뢰하지 않겠다는 것이냐?'

, 하나님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십니까? 심장이 멎는 같았다. 숨을 수가 없었다.

"너는 그들을 삶에서뿐 아니라 죽음에서도 내게 맡길 없단 말이냐?"

갑자기 따뜻한 기운이 전체에 흘렀다. 나는 조금 울었던 같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힘없이 말했다. " 그들을 주님 손에 맡깁니다. 주님께서 사망에서나 생명에서나 그들을 돌보아 주실 것을 압니다"

그러자 떨림이 가라앉았다. .. "나는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나나 그들에게 어떠한 대가를 요구할지라도 그것을 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신뢰하겠습니다. '

그들이 비행기는 추락했다. 그리고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사망했다. 하지만 아내 역시 어떤 예감을 느꼈고 여행을 갑자기 중단하여 참사가 일어나기 바로 기착지에서 비행기에서 내렸다.

   

확신은 하나님의 성품에서 온다. 성품이 전적인 신실함이라는 것을 그리스도가 보여 주신다. 그리스도는 절대로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버리지 않으신다. 당신이 그분을 겸손히 신뢰하며 그분께 헌신한다면, 그분은 당신이 길을 잃고 멀리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잘못 행하더라도 그분은 당신의 행실을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경험을 중요한 영적 성숙의 기회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보고 주님께 우리의 약함을 내어드리며 단호히 부정적인 태도를 다스려야 한다.

   

나는 고난이 존재하는 이유를 불가해한 신비라고밖에 말할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헤아릴 없다해도, 적어도 하나님의 마음을 수는 있다. 궁지에 처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우리 가운데서 사시는 것이었다. 우리의 고통을 맛보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를 위한 인간 구원의 잔을 채우시는 것이었다.

   

나는 항상 알지는 못할 것이다. 여하튼 고난이 생기는 원인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고난에 어떻게 반응하느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고난이 생긴 원인을 완전히 알지 않고서도 고난으로 연단받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고난 가운데 감사한다. 이것은 고난을 인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 감사하는 것이다. 나는 넉넉한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나님이 나를 능히 구원하실 있으며 정하신 때에 나를 구원하시리라는 확신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한다.

   

우리는 문명과 동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내게는 수술 기구라고는 전혀 없었고, 쪽집게 하나와 재봉용 바늘과 실뿐이었다. 아들의 고통을 덜어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이의 작이 몸을 단단히 붙잡혀있는 동안, 나는 겁에 질린 아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어야 했다. 마음이 찢어질 아팠다고 한다면 감상적으로 들리겠지만, 실제로 아이의 고통이 바로 고통이었다. 어째서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고 아이를 위로해 방도가 내게 없었던가? 나는 아이의 고통에 가슴 아파하면서 족집게로 보드러운 살갗을 집어 올리고 재봉용 바늘을 번이고 턱에 찔러 넣었다.

   

피할 있는 고난과 불필요한 고난이 있는가 하면, 그리스도를 위한 진정한 고난도 있다. 관용과 정치적 자유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공간에서 겪는 위험을 잊고 지낸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선포한다는 것이다. 신약 성경은 침묵하는 기독교를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가운데 가지 중요한 측면은 그분의 진실성이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며, 모든 진리의 원천이 되신다. 사단이 우리를 지배할 권세를 얻게 것은 우리가 그의 거짓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그것을 믿어 주기 전에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이 확실히 일어날 일보다 두려운 경우가 많다.

   

울부짖는 사자... 사자가 실제로 삼키는 경우보다 그저 울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우버드 편대장이 대답했다. '우린 실수 같은 합니다. 실수를 감당할 여지가 없으니까요'

'그래도 한다면요?' 기자가 물었다.

" 그런 생각이 절대로 마음속에 떠오르지 않도록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비행을 없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