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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입니까(후안카를로스오르티즈)영혹,말씀,순종,사랑,명령,자발,제사,전통,언약

bangla 2016. 4. 16.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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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입니까(후안카를로스오르티즈)영혹,말씀,순종,사랑,명령,자발,제사,전통,언약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서 전도했다.

   

예수님은 어떠한 초대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그분이 모든 가정과 사람들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특정한 교리나 공인된 사실에 동조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구원받는다.

   

구원은 명령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구원은 복종이다.

   

천국이 있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죽어야 한다. 그러나 구원받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노예됨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뜻을 계속해서 행하기 원한다.

목숨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잃어야 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 들으십시오. 당신에게 잠깐 동안 모든 것들을 사용하도록 해주겠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당신이 나의 것이듯이, 모두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제 내가 주인이기 때문에, 내가 필요하다고 때는 언제든지 그것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노예여, 무슨 권리가 있다고? 당신에게는 아무 권리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사셨고, 당신의 모든 시간의 주인이시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사용한다고 하는 헌금 가운데 많은 부분이 실제로는 우리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예수님이 자신에게 드려진 것이라고 인정하시는 유일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구제이다.

   

오랜 세월동한 나는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운데서 드러나야 덕목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설교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사랑은 가장 소중한 것들 가운데 하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나서 진짜 사랑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는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나타나야 미덕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사랑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삶임을 알았다. 사랑은 가장 소중한 것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가장 소중한 그것이다.

   

성경에서 빛은 사랑이다.

   

어두움은 개인주의, 이기주의이다. 빛은 사랑, 교통, 친교이다. 만일 우리가 가운데 행하면, 우리는 서로를 형제로 알기 때문에 우리에게 사귐이 있을 것이다.

   

사랑이 생명이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성령의 열매 대신 은사들을 구한다. 은사들을 감사해야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성찰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결코 '그의 은사들로 그들을 알리라' 하시지 않고,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말씀하셨다.

은사는 사람의 영적 성숙에 비례하지 않는다.... 오직 열매로만이 나무에 대해서 있다.

   

은사들을 소유하지 못한데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한데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있을 없다.

   

사마리아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를 선한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지만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거기 이르러 라고 말씀하셨다.

   

선행은 우리의 사랑에 대한 증거이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너무 구름 잡는 식이다. ' 형제여, 당신을 마음 깊이 사랑합니다.'하지만 포옹과 미소 외의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사랑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

   

시간이 없다고 말할 , 우리는 우리의 이기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우리가 시간을 우리의 작은 왕국을 세우는데 쏟고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죽는다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써야 했던 시간을 비로소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매일의 24시간을 쓰셨다.

   

똑바로 기억하라. 사랑은 명령이다. 사랑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묻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주님께 순종하기 시작하면 된다. 우리가 순종할 놀라운 일들이 생길 것이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하셨고, 우리 또한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해야 한다.

사랑은 명령이다. 사랑은 하나님 나라의 산소이며 생명이다.

   

찬양은 우리의 모든 언어이다. 찬양은 천국의 언어이다.

   

흑암의 백성들은 날씨, 정부 관리, 교통 모든 것을 불평한다. 불평이 그들의 언어이다.

   

다윗이 여기 있다면, 그는 아마 다가와서 우리 손에서 찬송가책을 빼앗으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찬양하지 마시오. 나는 시편을 당신 낮잠 부르라고 쓰지 않았오. 시의 한마디한마디는 감동으로 쏟아낸 영혼의 고백이오. 그런데 당신은 판에 박힌듯이 찬양하고 있오. 그러니 찬양이 따분할 수밖에!'

   

'후안, 너는 지금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하는 일은 사업이야' 나는 그분의 말씀이 무슨 뜻인 몰랐다.

'너는 코카콜라 회사가 코카콜라는 파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너는 학교에서 배운 모든 술수를 쓰고 있다. 도대체 네가 하는 일들 가운데 어디에서 나의 손길을 찾아보겠는가?'라고 그분이 말씀하셨다.

나는 말을 잃었다. 나는 우리 교회가 영적인 지체라기보다는 회사에 가까웠음을 시인하지 않을 없었다.

교인수를 늘렸다고 자라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살이 쪄가는 것이다.

'결국 너는 지금 교회가 아니라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영적으로 말해서, 누구도 아버지가 없다. 너는 교인들의 아버지가 아니라 분주한 고아원 원장이다. 네가 그들에게 관심을 ㅂ이고 있고, 운영비를 지급하고 우유병을 챙긴다 하지만, 너와 어느 누구도 실제로 갓난 아기들을 양육하고 있지 않다.'

   

우리가 영적 갓난 아기라는 다른 증거는 교회의 분열이다.

세번째 증거는 우리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찾을 있다.

... 그리스도 인들이 성령의 열매보다 은사에 항상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재미있지 않은가?

다른 증거는 교회에 일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하고자 훈련받으려는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서 신학교로 향해야만 하는데 이것은 어찌된 까닭인가? 이유는 교회가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할머니에게 '어떻게 많은 아이들을 모두 잘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셨습니까?'라고 물은면,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어떻게 키웠겠어요. 단지 여섯 애만 키웠지요'

   

제자는 회원과는 다른 것이다. 제자란 그의 스승의 삶을 살도록 요구받은 사람이다. 다음에 점차로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삶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우리 목사들은 먼저 우리의 자녀들에게 말해야 한다. 복종하지 않으면 권면해야 한다. 그래도 듣지 않을 때는, 모든 권위로 책망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망나니 자식을 두게 것이다.

   

다른 사람을 제어할 권세를 갖기 원한다면, 다른 사람의 통제 아래로 들어가라. 이것이 영원한 하나님의 법칙이다.

   

예수님은 '죄인들이여 교회로 오라' 말씀하시지 않고 '믿는 자여, 세상으로 가서 제자 삼으라' 말씀하셨다.

   

전통의 힘이 이렇게 무시무시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제약 때문에 원하시는 많은 일들을 하실 없다. 그분이 우리에게 약간의 변화를 요구하실 때마다, 우리는 거부의 몸짓으로 부르르 떤다.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분별하기 위해 우리가 일은 무엇인가? 거룩한 제사로 드려야 한다.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우리의 전통들은 탄탄대로와 같다. '주님의 뜻을 행하도록 도우소서'라고 기도하지만 길에는 이미 차선까지 그려져 있다.

   

사람이 신자가 되면 처음에는 세포,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세포에만 속하게 된다. 그는 지도자로서 양육받기 위해 다른 세포로 보내진다. 다음 그는 명의 완전한 제자로서 위로부터 공급받고 동시에 결신자들과 아직 어린 제자들에게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계속되는 섬김으로 인해 고갈되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피둥피둥 살만 찌는 사람도 없다.

   

하나님은 언약을 그분이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실 세우신 언약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언약은 외부로부터 명령이 아니라, '자발적인 순종하려는 마음'이다. 하나님은 '내가 나의 법을 그들속에 두며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백성이 것이라,'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보통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언약의 후반부만을 설교하고 가르친다.

그러나 언약은 죄외 용서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다.

   

동방박사들의 예수님 대신에 별을 경배하였다면, 그들은 우상을 하나 만들고 말았을 것이다. 별은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도구이며, 실체의 그림자이었을 뿐이다.

   

우리는 바닥에 발이 닿지 않을 때까지, 강물에 잠겨버릴 때까지 깊으데로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강변으로 밀려난다. 강은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는 대로 따라 흐르기 때문에 그렇다. 오늘날 우리는 여러가지 면에서 성령을 제한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발이 아직 바닥을 딛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간다. 그러나 우리가 물에 있을 , 강은 우리를 물결의 흐르는 곳을 떠가게 한다.

강이 언약이다.

성경은 한가지 약속만이 있다. 아버지의 약속인 성령님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모든 약속은 약속에 종속 되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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