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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또 읽고/기독교

부흥세대여통곡하라,레오나드레이븐힐,규장,겸손,기도,믿음,영광,영혼,순종

bangla 2016. 4. 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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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부흥이 지체되고 있다... 당신 때문에

   

기독교는 아주 단순하면서 아주 숭고한 것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하나님의 도움에 의지하여 시작 속에서 영원을 위해 사는 것이 기독교이다. -Adolf von Harnack.

   

부흥이 지체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제단에서 무릎 꿇는 시간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악한 본성은 여전한데, 어찌하여 오늘의 사역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조롱 당하지 않으며 돌을 맞지 않는가? 어찌하여 지금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모든 면에서 똑같은가?

   

마지막을 부흥이 지체 되는 다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기 때문이다.

   

기도하여 응답받고 영적으로 부요해지기 원하는 사람은 고독을 감수하고 눈물 젖은 빵을 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가족과 사회의 박해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적게는 심리적 갈등에 휩싸이거나 가장 친한 사람들과 분리되는 고통도 감수해야 것이다. 사실 이러한 고독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높은 수준의 영적 단계에 이르기 어렵낟.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들렸다.

그것이 전부였다.

   

세상의 즐거움은 자꾸 멀어져 갔으며,

나의 영혼은 주님을 찾았다.

   

나는 일어나 주님을 따랐다.

그것이 전부였다.

   

주님의 음성이 들릴

당신도 따를 것인가?

   

   

'기도하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초인종을 누른 문이 열리기도 전에 달아나는 소년과 같다.'

   

기도가 우리의 환경을 바꾸는가? 그렇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도가 기도자를 바꾸어놓는다는 사실이다.

   

리빙스턴이 '아프리카 탐험의 문을 활짝 열어주셔서 저의 탐험 기술과 불굴의 정신이 천하에 알려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면, 그의 기도는 아프리카 밀림의 바람과 함께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 주여, 세상의 죄의 상처가 언제 치유될 것입니까?' 라고 기도했기 때문에 오늘날 그의 기도가 우리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는 기도하면서 살았고, 무릎 꿇고 기도하다가 죽었다.

   

우리가 기도할 수록 영혼 사랑이 뜨거워지고, 영혼 사랑이 뜨거워질 수록 더욱 기도하게 된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기도한다. 기도하는 사람은 지혜를 얻는다.

   

하나님이 사람을 붙드시고 사람이 하나님을 붙들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사람이 성령 안에서 탄식할 하나님은 행동하신다.

   

건널 없는 강이 있는가?

넘을 없는 산이 있는가?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이루기를 기뻐하신다네.

사람으로서는 없으나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네.

.... 그러나 기억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파트너로 일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다문 우리의 주인으로 일하기 원하신다.

   

인간적으로 의지하겠다고 결심할 있는 사람이 우리 명이나 되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수단을 포기하면 죽을 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방법은 인간적인 판단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오직 성령님이 주시는 깨달음을 얻을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할 있다.

   

눈물을 흘리며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기도하는 지도자가 얼마나 되는가? 자기들이 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남에게 가르칠 있는가?

   

기도는 일의 효율성 보다는 영적 능력을 위한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만 나가서 영적 싸움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지금 돈을 많이 내는 사람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과거에는 기도하는 사람이 존경을 받았다. 초대 교회는 수많은 성도들이 세상을 놀라게 하고 지옥을 뒤흔드는 강력한 기도를 드렸다.

... 기도를 대신할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 기도하든지 죽든지 하나이다.

   

마귀는 거듭남 대신에 적극적 사고방식을, 회개 대신에 기분전환을 , 신유 대신에 마인드 콘트롤을, 그리스도 대신에 적그리스도를, 예배 대신에 쇼를, 십자가의 비전 대신에 인간 지도자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유포시키고 있다.

   

우리를 비우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하나님께서 비워진 영혼을 채우시는 것은 순식간이다. 예수님은 가서 복음을 전하라라고 말씀하셨지만 또한 떠나지 말고 기다려라라고도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빵과 그리고 성경책만 가지고 일주일 동안 독방에 틀어박혀 있어보라. 그곳으로 들어갈 잇는 유일한 방문객은 성령님이시다. 그러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이다. 사람은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 독방에서 튀어나오거나 아니면 아라비아 광야의 바울처럼 것이다. 후자의 경우라면, 그는 바울처럼 지옥 세력의 주요 공격 목표가 것이다.

   

지금 죄의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고작 "여기 교인등록카드에 인적 사항을 기입하십시오. 앞으로 교회에 규칙적으로 나오고 십일조를 드리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내지는 않는가? 하지만 세례 요한은 달랐다.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충만했던 그는 회개하라라고 외쳤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의 말에 따라 회개했다. 가슴을 치며 뜨거운 눈물 방울을 흘리는 것이 회개는 아니다. 과거를 후회하며 가지 습관만 고치는 것이 회개는 아니다. 회개는 하나님과 죄와 지옥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진리는 타협을 모른다. 레닌

   

오래 살기 위해 몸을 사려야 만큼 그토록 장수가 중요한가? 기도하러 교회에 가는 것을 마다할 정도록 집에서 편히 쉬는 것이 좋은가? 결코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선언한다. 부흥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본래 '가능한 ' 이루려고 하기에 무슨 믿음이 필요하겠는가? '불가능한 ' 이루려고 하니까 믿음이 필요한게 아닌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능한 ' 아니라 '불가능한 ' 이루라고 거듭 말씀하신다.

   

우리 교회는 부흥이 아니면 장례식이 있을 뿐이다.

   

구세군 사역자들이 윌리엄 부스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리가 모든 수단을 써보았으나 사람들이 꿈쩍하지도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을 , 부스는 울어보십시오 라는 짧은 답장을 보냈다. 그들이 그의 말에 따랐을 부흥이 일어났다.

오늘날 교회는 눈물을 가르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그렇게 없다. 왜냐하면 성령님의 감동 없이는 눈물이 있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주님이 세상의 불신자들을 오래 참으시는 것에 별로 놀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눈멀고 귀먹은 그들 앞에서 아무리 손짓을 하고 소리를 질러도 그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나를 정말 놀라게 하는 것은 주님이 교회를 오래 참으시는 것이다. 주님이 그토록 게으로고 이기적이고 잠에 빠져 있는 교회를 오래 참으시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하나님이 정말 문제 삼으시는 것은 탐자 세상 안에 인느 탕자 교회다.

   

'하나님,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질책할 아는 선지자를 보내주소서. 임박한 심판과 영원한 지옥의 환상을 보고 깨어지고 부수어기조 변화되어, 전도자로 나서서 말씀을 전하다가 순교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게 하소서.'

   

불타는 떨기나무가 모세를 끌어당겼듯이, 불타는 교회는 세상을 끌어당길 것이다. 사람들은 불타는 교회의 한복판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것이다.

   

교리만 정통이면 무슨 소용인가? 그들의 교리에 성령의 불이 붙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비로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순진한 사람이 있다. 그가 성경책을 집어들고 읽는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다. 이것을 보고 우리는 무척 놀란다. 날라는 걸까? 그것은 우리가 성경은 설명되어야 책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는데, 저런 사람이 어떻게 성경을 믿을 있는가?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놀라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명심하라. 성경은 우리가 믿어야 책이며, 말씀에 따라 순종해야 책이다.

   

설교자는 설교단을 유명하게 만들지만 선지자는 감옥을 유명하게 만든다.

   

바울은 온전히 그리스도께 충성했다. 그는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다. 그의 심장 박동, 그의 생각, 그의 걸음걸음, 그의 영혼의 갈망, 그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와 인간의 구원을 위해 바쳤다.

바울이 가는 곳에서는 부흥이 일어나거나 아니면 소동이 일어났으며, 때로는 가지 모두 일어났다.

   

지나치게 세상만을 생각하느라 천국에서 아무런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출산 예정일일 다가올 수록 산모는 피곤과 통증을 호소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잃어버린 자들을 구하겠다고 나서는 교회도 밤을 새며 중보기도를 드려야 한다.... 영혼 구원을 위해 산고를 치르는 사람들 또한 공연히 사람들 앞에 나서지 말고 조용한 곳을 찾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한다.

   

부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부흥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교회가 자신을 깨끗이 하고 겸손히 엎드려 중보기도를 드릴 부흥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부흥을 원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기만 한다면 우리에게는 부흥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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