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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또 읽고/기독교

세상과충돌하라,토저,성령충만,갈망,감정,영혼,예수,진공상태전구,기쁨,서원

bangla 2016. 4. 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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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충돌하라,토저,성령충만,갈망,감정,영혼,예수,진공상태전구,기쁨,서원

   

성령 충만이 무슨 비정상적 상태에 빠지는 것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편견이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 충만의 상태에 있는 것이 정상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성령 충만한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대들은 그대들이 원하는 만큼 거룩해질 것입니다.

여기서 원한다는 것은 갈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의 기복에 따라 일희일비하면서 자신의 감정 상태에 따라 자신의 신앙을 판단하는 잘못에 빠지기 쉽다. 마음이 편해지면 하나님이 함께 계신 같고, 왠지 불안이 생기면 그분이 멀리 가버리신 같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불안과 공허감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에게 불안과 공허감이 찾아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에 찾아오셔서 쟁기질을 하시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신앙은 설명하고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것들은 나를 해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떼어놓는 것만이 나를 해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의 재산, 나의 명예 그리고 나의 목숨을 취한다해도 그리스도의 보혈로 붉게 물든 두꺼운 외투가 나를 두르고 있다면, 나는 죽어서 2천년 동안 하나님의 품에 안겨 있는 사람들만큼이나 안전하다.

   

유감스럽게도 젊음이들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는 경향이 있다. 간절함이 부족한 것이 젊은이들의 단점이다. 젊은이들이여,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라.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아라.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숭모하기 위한 종교이다. 기독교는 단지 죄의 형벌에서 건짐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독교는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실현시키는 종교이다.

   

그리스도의 진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복잡한 세상을 살아갈 우리의 주의를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놓는 것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우리의 주의를 빼앗지 않는 순간들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그런 순간들을 놓치지 말고 마치 나침반이 북극을 향하듯이 하나님을 향하라. 이렇게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다.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은 호화판 신자가 아니라 정상적인 신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성령 충만하지 않다면 그는 병든 신자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는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를 알고 있다. 너는 성경을 읽었고, 네가 읽은 성경이 지금 앞에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영광의 주님은 우리를 옳은 데로 이끌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 찾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합리화해주는 말을 듣기 위해 다른 인간을 찾아가서 사람의 시간을 빼았는다.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모른 체하고 넘기는 선수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진공상태의 전구는 깨지면 공기가 즉시 몰려들어가기 때문에 우리는 무릎을 꿇고 " 공기여! 전구 안으로들어가다오" 라고 소리칠 필요가 없다. 전구를 깨라. 그러면 공기가 즉시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전구를 깨기만 하면 된다. 전구를 깨지 않고 초조하게 서성거리면서 계속 말만 하는 것은 아무 짝에도 소용없다.

   

우리는 과거에 범한 죄를 용서받지 못한 단지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다. 종종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기억하는 데에 사용된 우리의 천재적 기억력이 우리의 죄를 기억하는 데에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우리는 잊혀진 죄는 용서받은 죄이다라는 착각 속에서 살지 않는가?

   

하나님은 당신에게서 기쁨을 앗아가려고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무한한 기쁨을 주려고 하신다. 하나님 자신이 바로 무한한 기쁨이시다.

   

교육은 당신을 세련되게 만들어줄지는 몰라도, 자아를 죽이는 데에는 무력하다.

   

종종 사람들은 죄를 범한 자신에 대한 분노를 회개로 착각한다. 죄를 범했을 우리는 자신이 좋은 선택을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자신에게 분노한다. 그러나 이런 분노는 회개가 아니다. 철저한 회개 이것이 누가 참신자인지를 말해준다.

   

하나님 저에게 긍휼의 상처를 주소서. 그리하면 제가 많고 불쌍한 세상 사람들과 함께 고통당할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면 저의 경건이 습과적인 봉사로 변질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향한 갈망의 상처를 주옵소서, 하나님을 향한 향수병이 불치병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향한 타는 목마름을 느끼게 하시고, 저의 평생 동안 하나님을 알고 찾고 만나고 느끼게 하소소. 저는 아무 조건 없이 이것을 구하나이다. 간구를 들으시고 허락하시되, 제가 치를 대가가 무엇이든지 개의치 마소서.

   

진지함과 우울함은 다른 것이다. 하나님은 진지하시지만 우울하시지는 않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우울한 곳이 아니다. 그곳은 진지한 곳이다.

   

1. 죄의 문제를 철저히 해결하겠다고 서원해라.

2.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겠다고 서원해라.

우리의 젊은 병사들은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만이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있습니다.

3. 험담하지 않겠다고 서원하라.

4. 자신을 방어하지 않겠다고 서원하라.

5. 하나님의 영관을 가로채지 않겠다고 서원하라.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에게 복을 셨다고 나는 믿습니다.

   

나는 다니엘 웹스커가 연설할 때면 나는 정신을 집중하여 듣습니다. 나는 위대한 사람에게 최대한 가까이 앉아서 그의 유창한 연설을 듣습니다. 그의 연설을 듣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내가 연설을 듣기 전보다 위대한 사람이 같다고 느껴집니다.

   

당신은 오늘밤 스스로의 믿음을 판단할 있다. 당신의 마음을 깊이 살펴라.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라. 나는 그리스도인이 뻔한 사람인가? 아니면 진짜 그리스도인이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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