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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존스토트,쫓아감,해방,자유,상징,민주주의,용서,지성,사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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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존스토트,쫓아감,해방,자유,상징,민주주의,용서,지성,사랑)

bangla 2016. 4. 1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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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혼자 앉아 있을 일만 잠시 놓으면 그토록 피하고 싶어했던 그분이 꾸준히, 치의 양보도 없이 다가오시는 것을 밤마다 느껴야 했던 처지를 상상해 보기 바란다. 내가 너무나도 두려웠던 그일이 마침내 일어나고야 말았다. 나는 여름 방학동안에 드디어 항복했고,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했으며,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아마 밤의 회심은 한국을 통틀어 가장 맥빠진 회심이자 내키지 않는 회심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너무나도 찬란하고 선명해 보이는 일이 당시 내눈에는 그렇게 비치지 않았다. 하나님은 얼마나 겸손하신지 이런 조건의 회심자까지 받아주신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는 그래도 제발로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끌려가는 와중에도 발길질을 하고 몸부림을 치고 화를 내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도망갈 기회를 찾는 탕자에게도 하늘의 높은 문을 활짝 열어 주시는 그분의 사랑을 누가 찬양하지 않으랴... 하나님의 준엄함은 인간의 온화함보다 따뜻하다. 그의 강요는 우리를 해방시킨다.

   

그리스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번째 방법은 저의 패배감을 통해서였습니다. 저는 청년기의 강렬한 이상주의에 사로잡혀 제가 바라는 미래상으로 영웅적인 그림을 그려두었습니다. 친절하고, 이타적이고, 공공을 위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똑같이 분명한 그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심술궂고, 자기 중심적이고,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림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상은 높았으나, 의지는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의외지만, 확실히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자기 중심성입니다. 그분은 사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셨지만, 자신이 나라의 시작을 위해 왔다는 말을 덧붙이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부성에 대해 이야기하실 때도,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이렇게 나라는 인칭대명사를 두드러지게 사용된 것에 우리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겸손을 가장 탁월한 미덕으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을 세상의 모든 종교지도자들과 구분 주는 점이기도 합니다. 다른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을 바라보게 하지 않고 자신이 가르치는 진리를 바라보게 함으로, 자기 자신이 드러나지 않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과 사랑과 순종의 대상으로 자기 자신을 제시하시며 자신을 내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 이러한 가설과 맞지 않는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착각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 자신만 속고 있을 다른 사람은 속이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바로 자기 중심성과 겸손의 결합, 예수님의 가르침에 나타나는 자기 중심성과 예수님의 태도에서 나타나는 겸손의 결합입니다.

   

많은 다른 종교 지도자들은 만큼 살다가 성공적으로 자기 사명을 완수하고 자연사했습니다. 모하메드는 62세에, 공자는 72세에, 부처는 80세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읜 30 초반에 자기 백성에게 버림받은 사실상의 패배자로, 그러나 자신은 죽음으로써 사명을 완수한다고 주장하면서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실제로 지상에서의 마지막 며칠 동안에도 예수님은 여전히 사역의 완성을 기대하셨습니다.

   

떼어진 떡과 부어진 포도주, 두가지 요소에서 우리는 죽음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이것보다 극적인 상징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이 어떻게 기억되기 원하는지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바로 그분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참된 기독교만이 극단 모두를 피할 있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인보주의자의 태평스러운 낙관주의나, 냉소주의자의 어두운 비관주의가 아니라, 성경은 근본적인 사실주의 입니다' 성경은 인간성의 영광과 수치, 위엄과 부패라를 역설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 인간성의 역설 혹은 모호성 때문에, 이제까지 개발 정부의 형태 민주주의가 최상의 형태입니다. 왜냐하면 이론상으로 민주주의는 인간의 위엄과 부패를 모두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정의로울 있는 인간의 능력 때문에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그리고 불의를 행하려는 인간의 경향

때문에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자유는 구원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은 것은 바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네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일 부러운 것은 바로 용서입니다. 내겐 나를 용서해 사람이 없습니다. Marghanita Laski

   

내가 숨쉬는 곳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곳에서 나는 산다. -Robert Southwell

   

내가 당신의 것일 , 나느 비로소 완전한 자신이 됩니다.

   

난제 중의 난제인 바로 사랑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모든 사람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사람들은 사랑에 빠져 있거나, 사랑에 빠지려 하거나, 사랑이 식어가거나, 사랑을 찾고 있거나 사랑을 피할 길을 찾고 있다. - Woody Allen

   

말은 단순히 인간 지성의 한계를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찾을 인간의 지성은 그분의 깊이에 빠져 무기력하게 허우적댈뿐입니다. 무한한 하나님의 존재에 비해 유한하고 보잘것없는 우리의 지성은, 비록 경험과학에서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지만 하나님을 발견하는 데는 전적으로 무능합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생각을 닫는 것이 아니라 여는 것이며,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의 균형을 보며 언제나 감탄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지 마음을 편히 가지고 쉼을 즐기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면, 신기한 교환행위가 일어납니다. 먼저 예수님은 우리의 멍에를 풀어 주신 대신에 자신의 멍에를 씌워 주십니다. 먼저 우리의 짐을 내려 주시고 나서 대신에 자신의 짐을 지워주십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골라잡아 섞기식 사고 방식의 영향을 받아서 멍에 없는 쉼을 얻기 원합니다. 자기 짐을 벗어버리고자 하지만 그리스도의 짐을 지지는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지 초대는 서로 분리될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만 골라 가질 자유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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