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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 of me 나의 끝 예수의 시작, 카일 아이들먼, 약함, 사명 본문
----------- 때 예수님의 실재를 만났다
• 더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 때.
• 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을 다
• 내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를 절실히 깨달았을 때.
• 아무 데도 기댈 곳이 없었을 때.
•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등을 들렸을 때.
그러나 대부분의 대답은 이처럼 구체적이었다
• 말기 암으로 몇 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을 때.
•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나서 집을 나갔을 때.
• 아버지의 총을 손에 쥐고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도를 드렸을 때. 그 기도는 참으로 오랜만에 드린 기도였다.
• 중독을 이겨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했을 때.
• 이혼서류가 날아왔을 때.
• 예수님이 이 땅에서 가장 어두운 구석인 스트립클럽까지
찾아와 나를 향한 사랑을 보여 주셨을 때. 그때 그분이 나를
찾지 못하는 곳은 없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 30년 동안 청춘 바쳐 일했던 직장에서 아무 대책도 없이
쫓겨났을 때.
• 병원에서 심부전이라는 이유로 낙태를 권했을 때. 그때
난생처음 밤새도록 기도했다. 지금 내 딸은 스물세 살이다.
• 가정을 되살릴 힘이나 포르노 중독을 이길 힘이 내게 없다는 걸
마침내 깨달았을 때.
• 남편이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 초음파 검사로 태아의 심장박동이 멈춘 것을 확인했을 때.
답글을 쭉 읽어 내려가다가 이 모든 대답을 하나로 집약시킨 듯
한 글을 발견했다. 브라이언과 내 페이스북 친구들의 말은 결국 이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나의 끝에 이를렀을 때 비로서 예수가 나에게 실재가 되었다.
문제는 우리가 갈라진 금을 솔직히 드러내 보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죽어도 약함올 보이기 싫어하는 사람이 참 많다. 우리는 실
수나 홍, 상처 위에 어떻게는 덧칠을 해서 흔적을 없애려고 한다. 하
지만 하나님은 •킨츄기• 장인의 눈으로 우리의 깨어짐을 바라보신
다. 킨츄기란 일본에서 1,500년에 걸쳐 발전해 온 도자기 보수 기술
이다. 킨츄기 예술에서는 깨이진 도자기 조각올 붙여 보수하되 금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황금으로 깨진 부분을 부각시킨다.
원래 망가진 것을 보수한 물건은 싸게 팔리지만 킨츄기 도자기
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깨지기 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서 비싼 값
에 팔려 나간다. 그러다 보니 일부러 비싼 도자기를 깨서 금으로 보
수하는 수집가도 많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천국에서도 깨어진 것이
가장 귀하다.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능력이
다. 우리가 마침내 자신의 끝에 이르러 깨어진 조각을 내어놓으면
For sale : baby shoes, never worn
헤밍웨이, 6 단어로 이야기를
눈사태로 눈에 파뭍혔을 때, 침을 뱉어 중력을 확인
겸손한 자랑 humblebrag
왈렌다, 쓰레기 줍기
"제가 어떻게 울며 회개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올리겠습니다
댓글 다는 걸 잊으시면 안 돼요!" 바리새인이 이런 글을 올리면 역시
나 환호의 댓글이 줄을 이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댓글은 당연히 물
며 회개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언젠가 당신의 실제 삶이 페이스북에 올린 삶만큼 행복해지길.",
어느 날 이런 문구를 끄 무릎을 쳤던 기억이 난다. 어떤가? 당신에
게는 소설 미디어에 올린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리고 이것이 마
음의 청결과 무슨 상관인가?
소설 미디어가 성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우리의 끝에 이르게
도외준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소설 미디어는 우리로
하여금 행복한 연기를 하게 만들고. 연기하는 삶은 지독히 피곤하다.
존 스토트는 소설 미디어가 나타나기도 전에 연기하는 삶의 문제점
을 꼬집었다.
목회를 하다 보니 영적으로 방황하는 친구나 가족과 한번 통화
해 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는다. 중독에 빠진 10대 아들. 하나님을 떠
난 형제. 교회를 떠난 남편. "목사님이 에기 좀 해 보시겠어요?"
예전에는 이런 부탁을 받으면 기꺼이 전화기를 들었지만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도움
을 제시해 봐야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는
걸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자신의 끝에 이르러 전화
기를 들어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
다. 그래서 이제는 내 전화번호를 알려 주면서 "본인이 원할 때 언제
든 연락하라고 하세요"라고 말한다. 스스로 나아지길 원하기 전까지
는 내가 해 줄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알다시피 형님은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방금 친구 분들이 말씀하신 형님은 오래전에 돌아가겼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니면 완전히 변화된 마음을 설명할 길이 없다.
한때 이혼 직전까지 갔던 부부가 다시 마음을 하나로 모아 딸의 얼굴에
그런 미소를 피워 낼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이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약점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완벽한 배경이다.
당신의 약점은 무엇인가? 외모? 나이? 두려움? 상관없다.
실격 이유들을 다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라. 당신의 끝으로 가라.
그곳이야말로 하나님께 온전히 쓰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니!
약함에 대한 내 생각은 예전과 그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하나님
이 우리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역사하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그게 아니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약한데도 불구하고
능력을 드러내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 약함을 '통해' 능력을
나타내신다
비밀 경찰에게 들키지 않고 번역할 수 있는 사람
죽은 사람들은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심이 없다.
죽은 사람들은 자신의 옷이 얼마나 멋지고 예쁜지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죽은 사람들은 주식 투자에 빠져들지도 않고 승진에도
관심 없다. 죽음은 세상적인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는다. 죽으면
자기 자신과 자신이 가진 모는 것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우리 자신에 대해 죽으라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바로 이런 상태를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세상의 모는 것이 우리에 대해
죽고 우리도 그것에 대해 죽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그것이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기 부인을 통해 온 세상 속으로 그분의 나라를 확장시키신다.
이것은 우리가 죽어야 할 죽음이다. 한 차례의 죽음으로는 부족하다.
부분적인 죽음도 안 된다. 매일같이 완전히 죽어야 한다.
그렇게 나의 끝에 이를 때마다 내가 내내 갈망해 마지않던 것, 바로 그리
스도 안에서의 참되고도 풍성한 삶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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