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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김영봉, 삶과 죽음에 관한 설교 묵상 본문
죽어야 할 때 두려움 없이 주님께 가겠다는 믿음은 있는데, 지금 누리는 것을 다 남겨 두고 당장 주님 품에 가고 싶을 만큼 그 품을 사모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믿는 것과 사모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주님은 제게 주님 품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를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왜 이런 결함이 생겼을까? 하고 찬찬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깊어지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도 믿어지고, 천국이 있다는 것도 믿어지고, 영생도 믿어지는 것이 올바른 순서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순서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죽어서 천국 가기 위해서 혹은 영원히 살고 싶어서 예수를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순간 천당 가는 티켓을 손에 거머쥔 것처럼 생각한다. 그 ㅣ티켓만 있으면 이 땅에서 어떻게 살든 죽고 나서 천국에 간다고 믿습니다.
저는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라면서 제가 만난 많은 교인들의 목표는 대게 '죽어서 천국 가는 것'에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설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전도도 그런 식으로 했습니다. 매일 주님과 동행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들은 드물어 보였습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질적인 성숙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천국 가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서 천국을 보는' 것으로 순서를 바꾸는 데 희망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죽고 나서 갈 천국만 생각하지 말라. 예수님은 죽고 나서 천국에 가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지금 이곳에서 천국을 보라고 하셨고 천국을 살라고 하셨다. 그렇게 살다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힘써라. 그것이 잘 믿는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고통을 겪는 아내를 돌보는 일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아내 사랑법이라고 느꼈다. 때때로 나는 모든 가정에는 나름대로 져야 할 십자가가 하나는 있기 마련이라고 믿었는데, 나의 십자가는 조울증 아내를 돌보는 일이었따. 이 질병과의 기나긴 싸움을 통해 우리의 관계와 사람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의 관계는 더 강해졌다…. 만일 아내를 정신병원에 맡겼더라면, 지난 40여년 동안 아내와 나누었던 사랑의 관계를 결코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여보, 은퇴하고 나면 서울 와서 살까?"
그런데 집사님이 의외의 대답을 하십니다.
"아니."
"왜?"
"내 아들들이 미국에 있으니, 내 집은 미국이에요."
"당신, 미국에서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던 것 아니야?"
"이제서야 내가 누구인지 알았어요. 내 집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에요."
미국에서 한국에서도 끝내 집을 찾지 못함. 뿌리내리지 못함. 이방인.
타고난 품성과 양육된 교양이 합쳐져서 만들어 내는 품격을 말함.
권사님의 눈이 그렇게 깊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향한 그분의 깊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의 마음과 영혼은 하나님께 깊이 뿌리내렸기에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좋은 삶을 살기를 힘쓰라. 그러면 주님께서 좋은 죽음을 주실 것이다.
-수잔나 웨슬리
결국 따지고 보면, 인생이 우리에게 던지는 모든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죽음에 대해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 다그 함마르셸드, 전 유엔 사무총장
죽음을 경멸하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운 상황에서는 살아남은 것이 진정한 용기다. - 토마스 브라우니
제가 "주님 만날 준비는 되셨지요?"라고 여쭙자 "그러믄요!"라고 답하셨습니다. 기도를 드리고 작별 인사를 드렸더니 눈가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슬픔은 우리를 가난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지를 강력하게 상기시킵니다. 하지만 춤추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으켜 세워 첫걸음을 내딛게 하시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고통, 가난 혹은 어색함으로 인해 넘어지는 곳 말입니다. 예수님은 고간 없는 곳에서가 아니라 고난 안에서 우리의 슬픔 안으로 들어오시어 우리의 손을 잡아 부드럽게 일으켜 주십니다. 그리고 함께 춤추기를 청하십니다. 시편 저자가 "주님께서는 내 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는 기도의 길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슬픔 그 중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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