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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예수(마크베이커,세종)교만,교육,배움,건강,감정 본문
심리학자예수(마크베이커,세종)교만,교육,배움,건강,감정
삶이란 믿음과 관련된 어떤 것이다. 예수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하는 일 대부분이 믿음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물론 우리는 자신이 이성적인 존재이며 사실에 근거한 합리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느낌이나 믿음에 근거해 결정을 내리고, 나중에 이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럴 듯한 논리를 만드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예수는, 생각하고 알기보다 먼저 믿어버리는 우리의 싶성을 이해시키고자 비유를 사용했다. 예수는 사람들이 실제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많이 배울수록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깨달아야만 한다. 교만하다는 것은 불안정하다는 증거이고 그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은 자각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수는 사람이 지적인 능력만으로는 삶의 진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예수는 진리를 너희에게 가르치겠다.라고 하지 않고, 내가 곧 진리다라고 말했다. 가장 귀중한 지식은 지식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를 신뢰하는 것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예수는 자기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을 대화에 동참하게 만들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잇는 하나의 관계를 만들었다.
서로의 관계를 통해 삶의 가장 깊은 진실을 배우는 것...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진정으로 진실한 입장에 설 용기가 있어야 하며, 자신이 생각하고 지각하는 것이 틀릴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둘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식과 겸손의 관계이다.
다른 사람들을 섣불리 판단하여 비난하는 것은 자기를 비난하는 것이다.
확신을 가지고 진리를 믿어라. 그리고 겸손하게 진리에 접근하라.
자신감이 있어야 겸손할 수 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에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을 택한 사람이다.... 겸손한 사람은 작아지는 느낌없이 다른 사람이 중요하다고 느낄 수 있다.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거짓 믿음에 붙들리지 말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성숙하게 만들어라.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은 그들보다 자신에게 더 상처를 입힌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악하거나 선한 것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서 정의된다.
나는 거절당하지 않으려면 조용히 있어야 해라고 생각하는 대신 말하는 것을 늘 두려워했지만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한테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가 없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현명한 사람들은 그들이 믿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자신들에 관해서도.
자신을 많이 안다고 생각하면 변화하기 힘들다.
예수는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패턴을 따르기 보다는 의식적으로 현재 자기가 믿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배운다. 과거의 경직된 믿음을 따르는 것은 육체가 수명을 다하기 전에 영적인 죽음을 가져온다.
과거에서 배우지 않는 사람은 과거의 일에 붙들린다.
우리가 영적 성장을 위해서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약하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강해지기 위한 출발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변할 수 있다고 믿지만 이것은 오히려 성장을 방해한다.
진리는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원하는 것을 얻었을지라도 자신에 관해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기꺼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만 성장의 기회를 제공했다. 성정하기 위해서 스스로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내면에서 만난 소리와 맞설 의지가 있어야 한다.
용기는 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렵지만 믿음을 갖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우리가 변하는 것을 보고 행복해하지 않을 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편한 일이 될 수도 있다.
탕자의 비유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책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죄의 해결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기적으로 생각한 결과 관계가 깨어진 것이 죄이고,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이 구원이다.
심리적 건강은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 영적으로 건강하고 우리가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필요하다. 심리적으로 우리의 정신 건강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능력에 달려 있다.
예수님은 아들의 회개는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었을 때가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고 집에 돌아가기로 결심했을 때 일어났다고 말한다.
성숙은 우리가 죄를 계속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영적인 성장은 결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장점이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완벽하기 때문에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더 욱 성숙해진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의 문제를 과거에 저지른 것으로서가 아니라 현재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보셨다.
잃어버린 영혼은 고치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
예배는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 그것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무력함을 인정하는 것은 영적 성숙의 표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일은 가장 현명한 일.
예수님은 기독교가 지닌 상징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가르쳤다. 삶도 마찬가지 이다. . 삶 그 자체가 지닌 상징성을 알지 못하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삶은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의식과 추상적 경험들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수님은 물질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대신하기 때문에 우상은 사랑의 대용품이라고 했다. 같은 이유로 중독은 사랑의 대용품이다.
마약이 지닌 문제는 그것이 당신을 아주 잠시만 행복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심리치료는 건강하게 의존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서로에 대한 이해는 사람들 안에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창조된다.
감정은 영혼을 움직이는 추진력이다.
그는 자신감에 대한 그의 생각이 결국 그것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원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얻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것을 원했다. 그는 자신이 행복한 감정을 추구하기보다는 불행한 감정을 덮으려고만 했다. 이제 브라이언은 자신의 삶에서 자신감의 정의를 새로 내렸다. 즉 성공보다는 만족한 것이 자신감 있ㄴ느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어딘가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좀더 올바른 곳에 가려고 노력했다.
진정한 자손심과 자신감을 가진 사람과 함께 있으면 힘을 부여받는 느낌이 든다. 거짓 자존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교만으로 보충하려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억압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옳게 되려는 욕구는 독선의 신호이다.
개인주의는 신화이며, 또한 우리들의 행복을 내가 아닌 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두려움에 대한 방어 수단이다.
개인주의는 환영이고, 무신론은 자기 이외의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욕구는 우리를 오직 좌절로 인도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대한 방어 수단이다. 혼자 외롭게 죽을까봐 두려워하면서도 그것을 항상 원했던 것처럼 우리는 가장한다.
자신의 마음을 경배하는 것은 너무 작은 신을 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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