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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또 읽고/기독교

현실 하나님의 세계, 유진 피터슨

bangla 2016. 4. 16.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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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는 반드시 정직해야 한다. 지도는 또한 겸손하기도 하다. 지도는 자기가 그 나라 자체를 대신할 수 있는 체하지 않는다. 지도를 연구한다고 해서 그 나라를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지도의 목적은 우리에게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보여 주고, 우리가 여행 중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데 있다.

   

삼위일체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고 영접하고 순종하는 나라의 지도를 보여 준다. 삼위일체 자체가 그 나라인 것은 아니지만, 삼위 일체는 그 나라의 지도다. 우리에겐 이 지도가 너무나 필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너무도 방대하며 다각적인 존재로서, 우리 눈에 보이게도 보이지 않게도 일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 처음엔 우리가 그 단어들을 사용하지만 결국은 그 단어들이 우리를 사용한다. 상상력은 점차 무뎌진다. 결국 우리는 그저 표표 기능, 역할만을 다루게 될 뿐이다.

현 문화에서 우리는 모두 그저 기능이나 사물로서 연구되고, 명명되고, 취급받고 있다. '소비자'는 우리가 이렇게 취급되는 방식을 한데 모아 주는 용어다.

   

집에서든 일터에서든, 그저 멀찍이서 안내하고 동기부여하고, 계획하고 지도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에 너무 깊이 연루되지 않기 위해 늘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워하고, 일을 위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실재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이신 그 관계에 참여해야 하며, 다른 길은 없다. 우리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삶 안에서 독특한 참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독교적인 삶은 미리 프로그래밍된 것이 아니다. 기독교적 삶은 자유로의 해방이다. 삼위일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삶에 참여할 때 나오는 그 자유에 늘 깨어 있게 하고 응답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 모든 참여의 행위들은 하나하나 독특한 것이다.

영성의 모든 표현은, 가만 내버려두면 점점 나에 대한 것이 되고 하나님에 대한 것이기를 그쳐 버리는 경향이 있다.

   

삼위일체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매일 아침 거울에서 보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로 보게 해주는,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신학적 언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도대로 살 것이라면,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것이라면, 추상적으로 혹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구체적인 상황들 속에서, 즉 시간과 공간,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한스 우르스 발타자르, "삶의 형식이 없이는, 즉 자기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이 선택한 형식이 없이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야 사람의 인생은 그 형식의 영혼이 되며 그 형식은 그의 영혼의 표현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육체 없는 천사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실 수 있는 주소지를 가진 존재들이다.

   

우리가 이 창조 세계를 얼마나 많이 돌아다니건, 거기에 있는 꽃과 산을 얼마나 많이 사진으로 찍어 두건, 얼마나 많은 지식을 습득하건, 우리가 경탄을 계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르이 핵심을 놓칠 위험이 있다.

   

우리는 주로 형식과 형태에 의해서 산다. 만약 형식이 나쁘다면 우리는 나쁘게 산다. - 왈러스 스테그너

   

식탁의 문화는 주변으로 밀려난다. 우리 삶에서 식사의 중요성은 크게 감소되었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음식을 먹지만 식사라고 하는 복잡한 문화적 세계는 해체되었다.

   

우리는 공동체에 자신을 담그고 공동체를 끌어안지 않고서는 영적인 삶에서 어떠한 성숙도,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서 어떠한 순종도, 기독교적인 삶에서 어떠한 온전성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만으로는 결코 나 자신이 될 수 없다.

   

나는 너희 발을 씻겨 주었다. 너희도 서로의 발을 씻겨 주어라.

나는 너희를 사랑했다.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는 나를 보았다. 너희는 아버지를 보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내가 일하는 것을 보았다. 너희는 나의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어 왔다. 성령이 너희와 함께 계실 것이다.

나는 살아 있다. 너희도 살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내 안에 있다. 나는 너희 안에 있다.

나는 너희를 가르치고 있다. 성령이 너희를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내 안에 거하라. 나는 너희 안에 거하고 있다.

나는 미움을 받았다. 너희도 미움을 받을 것이다.

성령이 증언할 것이다. 너희가 증언할 것이다.

나는 떠나간다. 성령이 오실 것이다.

나는 해야 할 말을 끝마치지 않았다. 성령이 너희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세상 안에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 우리는 하나입니다.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나는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들도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나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나도 이제 그들을 세상에 보냅니다.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합니다. 그들도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내 안에 계시고 나는 당신 안에 있습니다.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하옵소서.

당신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구원받기란 쉽다. 그러나 공동체가 되기란 어렵다. 지독히 어려운 일이다.

   

자의식이 죽고 의지가 정확히 기울어져 일을 하기에 적합한 매개가 되도록 우리 의지가 투명해지고 텅 비게 되는 것.

   

삼위일체는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한다. 삼위일체는 아무도, 아무 방해물도 없는 방에서 혼자 책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면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믿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준다. 삼위일체는 복음이나 하나님이나 다름 사람을 탈인격화시키는, 우리 영혼을 파괴하는 온갖 것들이 우리의 기독교적 삶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주는 방어벽이다.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받아 공동체 속으로 들어올 때, 우리 삶은 더욱 철저하고 더욱 깊은 방식으로 관계적인 것이 된다.

   

투르니에… 그는 자신이 살아온 대로 글을 썼고, 자신이 써 온 대로 살았다.

   

이렇게 많이 알고,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면서도, 우리가 이렇게 형편없이 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릭 배스는 어떤 복잡하고 어려운 임무를 감당할 때면 높이 쌓인 벽돌들을 하나씩 끈기 있게 다 내려놓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고 한다. 천천히, 꾸준히, 조심스럽게, 한 벽돌 한 벽돌씩. 그러나 이제 그는 이 은유를 바꾸었다. 최근 그는 빙하에 대한 어떤 글을 읽었다. 빙하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 어느 것도 빙하를 막을 수 없다. … 오랫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러나 20m의 두께가 되면 이제 빙하는 움직이기 시작하여,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무엇도 그것을 막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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