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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탁의 그리스도, 스탠리 존스 본문

읽고 또 읽고/기독교

원탁의 그리스도, 스탠리 존스

bangla 2016. 4. 16.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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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파도에 휩싸인 커다란 배와 같다. 우리의 임무는 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아갈 방향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 보니파키우스

   

종교는 세 가지 낱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 '얻고, 자라며, 내준다'는 것입니다. 제 지식과 인격은 모두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받은 속죄는 결코 성장이 멈춘 것이 아닙니다. 제 삶이 도덕적으로 점점 더 승리하고, 주님과 점점 더 깊이 사귀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줄 것이 있습니다. 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는데 놀랍게도 이제는 나눠 줄 것이 생겼습니다.

   

당시 인류 역사상 가장 고매한 인물이 그리스도를 배제한 채 하나님과 속죄의 마지막 문제에 대해 몸부림치면서 얻은 최상의 답이 겨우 "기적은 바랄 수 없기에 오랜 세월이 걸립니다." 일까? 그것이 정말 마지막 답이라면 우리는 하나님과 속죄에서 버림받은 인생일 것이다.

…. 내가 25년 전 무질서한 내 영혼을 그리스도에게 드렸을 때의 기억이었다. 기적은 일어났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항상 내 체험 속에서 실재했다.

다음날, 나는 간디 옹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함께 이야기하는 내내 우리는 눈물을 흘렸고 서로를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자네, 선교 활동 자금이 끊겨 활동을 중단… 우리 쪽으로… 우리가 자네를 도와주겠네. 자네가 펼치는 선교 활동이 중단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자네의 선교활동이 중단되면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힌두교로 돌아갈걸세. 우리 이슬람 교도는 그것을 원치 않네."

   

자연에는 속죄 효과가 넘치도록 있다. 치유하는 힘은 어디서나 작용한다… 자연은 무언가 잃어버리면 즉시 뭔가로 보상하려고 한다.

   

가장 먼저 예수는 나를 죄에서 구원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예수는 내 우주를 구원하고, 내 우주 속에서 건드리는 모든 것을 구원한다. 예수가 구원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도에서는 완성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 건물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를 물어보면 이 세상은 본래 불완전한 것이 아니냐고 대꾸한다.

   

영혼은 다른 영혼에게서만 자극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책들을 평생 동안 연구함으로써 지식을 높이 쌓을 수 있지만, 영혼은 끝까지 전혀 개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혼을 살리려면 다른 영혼에게서 자극을 받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발견했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발견과 깨달음이 넘쳐흘렀기 때문에 혼자서 자기중심적인 명상으로 보낼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제자들은 하루빨리 기쁨의 잔을 여러 민족의 목마른 입술에 가져다주기에 급급했다.

   

한 힌두교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이슬람의 칼보다 위험하죠"라고 말했다. 우리가 동방의 영혼 속에 깊이 들어가려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겸손과 친절을 구현해야 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쳤지만 자기 자신은 그 기도를 한 적이 없었다. 예수는 "너희가 악할지라도"라고 말했지만 자신은 거기서 제외했다. 예수의 마지막 기도는 회복이나 인정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었다. "다 이루었다"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나라에서 과거의 훌륭한 것을 자기 속에 모으고, 충돌하는 듯한 덕성을 모두 자기 속으로 모아들인다. 모든 덕성은 서로 다른 덕성을 희생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는 그렇지 않다. 예수는 모든 덕성을 하나의 생명체로 합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상주의자이면서 현실주의자이고 신비적이면서 지배적이고, 깨달음이면서 갱생이고, 열성 신자이면서 실천가이고, 무서우면서도 부드럽고, 순결하면서도 누구나 가까이할 수 있는 분이고, 응집이면서 포용적이고, 진보적이면서 참을성이 많고, 상냥하면서도 엄격하고, 재판관이면서 변호사이고, 균형이 있으면서도 강렬하고, 흠 없이 완전하지만 누구나 닮을 수 있고, 해처럼 밝으면서 슬퍼하고, 어린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십자가를 짊어질 작성을 하고, 희생자이면서 승리자이고, 사람의 아들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갈등에서 보편성이 나오는 것이 바로 예수이다.

   

복음은 통역이다. 즉 복음은 영원의 언어를 시간의 말로 바꾼 것이다.

… "복음은 완전한 통역이다. 어린아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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