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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토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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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토저

bangla 2016. 4. 16.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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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아들로서 이 땅의 사람들 중에서 승리를 거두려면 세상의 방법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그와 반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는 안전하기 위해서 오히려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며,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잃어버린다. 만일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고 시도한다면 오히려 생명을 잃을 위험에 처한다. 높아지려면 낮아져야 한다. 낮아지기를 거부한다면 이미 낮아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낮아진다면 이미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약할 때 가장 강하고, 가장 강할 때 가장 약하다. 가난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부유해지면 그 능력이 사라진다. 남에게 가장 많이 주면 자신이 가장 많이 소유하게 되고, 가장 많이 소유하려고 하면 가장 적은 것이 남는다.

가장 낮아졌다고 느낄 때 가장 높이 있으며, 자신의 죄를 가장 많이 깨달을 때 가장 죄가 적다. 자신의 무지를 깨달을 때 가장 지혜로우며, 자신이 가장 많은 지식을 쌓았다고 믿을 때 실상 가장 무지하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많은 일을 하는 것이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이 가장 멀리 가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구원을 얻었다고 믿지만, 동시에 장차 구원 얻을 것을 기대하면서 소망 중에 기뻐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에 대해 공포심을 갖지는 않는다. 하나님에 임재에 완전히 압도되어 자신이 망했다고 느끼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한다. 그는 자신의 죄에서 깨끗케 되었음을 알지만, 자신의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음을 알고는 괴로워한다.

그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을 사랑한다. 자신이 비록 보잘것없고 초라한 존재이지만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이신 분과 친구처럼 대화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전혀 모순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본래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느낀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치욕의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음을 확신하며, 자신이 하나님에게는 가장 보배로운 존재인 것을 감사한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의 시민이기 때문에 그의 거룩한 시민권에 부끄럽지 않은 충성심을 가지고 산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땅의 자신의 조국을 깊이 사랑한다.

그리스도인은 머지 않아 저 밝은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것을 기쁨으로 기다리지만, 이 세상을 급히 떠나려고 하지 않고 다만 하늘 아버지의 부르심을 조용히 기다린다….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철저한 비관주의자이며 동시에 낙관주의자이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는 비관주의자가 된다. 왜냐하면 그는 십자가에서 영광의 주님에게 쏟아진 십판이 모든 사람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는 심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 밖에서 인간적인 소망을 찾으려는 시도를 거부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려는 인간의 노력은 아무리 고결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분 이외의 다른 것들을 철저히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여기서 신앙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 도달한다. 그러나 신앙은 그분의 사역을 그분의 인격에서 분리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그리스도 자신에게서 떼어놓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변형시켜서 믿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어떤 부분들을 배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신앙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모든 구속 사역, 그리스도께서 지금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위해 하늘에서 하고 계신 일,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통해서, 그들 안에서 행하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오직 나밖에 없는 것처럼 언제나 나를 생각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나에게 하나님밖에 없는 것처럼 언제나 하나님만을 생각할 때 비로소 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겨우 보답하는 것이다. - 프랑소와 마라발

   

참된 영성의 척도는 우리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욕구들이 무엇이냐? 라는 것이다. 스스로 십자가를 지려는 마음,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갈망, 거룩해지려는 욕구, 하나님의 관점에서 판단하려는 욕구, 의로운 삶에 대한 욕구, 기꺼이 희생하려는 마음, 시간을 초월한 마음

   

성령님은 우리에게 눈이 되시고, 이해력이 되신다. 우리는 결코 그분 없이 살아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공간이 사람을 거룩하게 만들 힘을 갖고 잇지 않듯이 시간도 그렇게 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실제로, 시간은 우리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다. 바보를 현인으로, 죄인을 성인으로 만드는 것은 시간이 아니고 변화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변화를 일으키시기 때문에 그들이 변하는 것이다.

   

징계는 그것을 당하는 사람의 동의 없이 그에게 부과되는 것이다. 반면 십자가는 본인의 동의 없이 부과될 수 없다. 주님도 자신이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서 십자가를 지셨다. 그분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 주실 것에 대해서 예언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만성적 회환은 깊은 회개의 증거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깊은 자애의 증거이다.

   

진리는 무엇인가? 성경의 이 본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것이 진리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진리의 반쪽만 알고 있는 사람이다. '성경의 이 본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고, 성경의 저 본문에는 저렇게 기록되어 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진리를 온전히 아는 것이다. - 킴벨 모건

   

하나님이 지고선이시라면, 이 땅에서 우리의 지고의 복은 하나님을 최대한 완전히 아는 것이다. 구속의 최종 목적은 영원히 복되신 하나님을 직접 뵙는 것이다.

   

하나님을 더 잘 알기 위해 노력 할 때 우리가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 마음을 갖고 계신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때문이다.

"모든 고결한 영혼에게 자신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이다. 당신이 준비만 되어 있다면 하나님은 즉시 자신을 부어주실 것이다. 실로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실 수 없다.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랑과 순종은 본래 하나라고 가르치셨다. 다시 말해서,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는 증거이며 그렇지 못한 것은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아홉 걸음을 걸어오시지만 마지막 한 걸음은 우리를 위해 남겨놓으신다.

   

선택의 자유가 없으면, 죄도 없고 의도 없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죄와 의는 의지적 자유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거룩하심과 진실하심을 체험하려면 영원이라는 시간도 부족할 것이다.

   

내가 얼마나 많이 주었느냐가 아니라, 내가 준 것이 내가 가진 것 전체 중에서 얼마나 많은 비율을 차지하느냐에 따라서 심판받을 것이다.

   

당신이 적게 가진 것은 당신이 적게 원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만큼만 하나님께 가까이 간다. 그들이 원하는 만큼만 거룩하고, 원하는 만큼만 성령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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