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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의 달인, 안환균 본문

읽고 또 읽고/기독교

변증의 달인, 안환균

bangla 2016. 4. 16.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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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진리를 찾고자 한다면, 빛은 충분하다. 그러나 거부한다면, 암흑 또한 충분하다.

   

2천년 가까이 전 세계에 흩어져 살던 그 고조선 사람들이 다시 옛 땅으로 돌아와 오랫동안 자기 나라 땅인 것처럼 잘 살고 있던 중국민족을 일시에 몰아내 버렸다. 그리고는 고조선이라는 2천 년 전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여 현대적인 한 국가를 세웠다.

   

다만 이 모든 인간의 죄와 고통과 죽음을 해결하시기 위해 직접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신 구체적인 '실물 사건'으로 보여주실 뿐이다.

삶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재난에 대한 인간의 모든 의문들에 이 사실 자체보다 더 완벽한 해답은 없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세계에서 당하는 갖가지 고통과 재난을 보며 기뻐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시다. 하나님께서도 그 고통에 마음 아파하시고 함께 우신다.

   

Bible 이란 말은 종이를 뜻하는 파피루스란 말에서 나왔다. 그 책 이름에 이미 '종이가 만들어지던 때부터 존재한 권위 있는 단 한 권의 책'이라는 의미가 상징적으로 담겨 있음.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의 책이기 때문에 우주 창조자만이 아실 수 있는 내용이 사실 그대로 기록 될 수 있었다. … 성경에는 그렇게 허공에 떠 있는 지구의 모양이 둥글다는 사실도 분명히 밝혀져 있다.

   

꽃과 벌 사이에 세워두신 창조질서의 관계가 무너지면 둘 다가 함께 죽는다. 이 설계구도가 깨지면 파멸이 온다. 사람들 간에 엮어두신 사랑과 섬김의 프로그래밍이 깨지면 관계가 죽고 사람이 죽는다. 그만큼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구제와 같은 이웃 사랑의 행위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의 하나쯤으로 여기는 것은 큰 오해다. 그것은 인간에게 처음부터 주어진 필연적인 삶의 행위요 이치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안 하면 안 되는 필수사항인 셈이다.

   

사회라는 유기체가 생명력을 발휘하게 하는 심장과도 같은 기능이 바로 이웃 사랑이요 섬김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보고도 마음에 아무런 부담이나 느낌도 없는 사람은 이미 큰 장애를 겪고 잇는 것이다.

   

불교나 유교는 그 창시자인 석가나 공자의 삶과 인격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 그들의 가르침이 중요하다. 그들이 남겨준 교훈만으로도 하나의 종교로서 성립되기에 충분한 토대가 된다. 그러나 기독교만은 예수라는 한 인물이 전해준 교훈만이 아니라, 결정적으로 그의 인격과 삶과 죽음, 그리고 실제적인 부활이라는 하나의 역사적인 구원의 사건이 없이는 결코 성립될 수 없는 종교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 가운데 다양성이 있기를 원하신다고 분명히 밝힌다. 우리는 이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기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화, 세계관, 과학 연구, 종교 등의 영역에 양심, 실천, 전도, 증거의 자유가 있어야 함을 선언한다. 우리는 세속 정부들이 상호간의 관용을 고취하고, 위에서 언급한 여러 분야에서 선택의 자유를 부여함으로써 종종 문화적으로 소외된 계측들, 종교인들, 창조적인 사상가들, 기타 여러 사람들을 박해와 독재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다원주의는 때로 이러한 합법적인 기능 이상으로, 다양한 존재들이 묘사하는 수준을 초월하여 모든 종교적 신앙들 혹은 적어도 중요한 전통적인 종교들은 다소간 동일한 가치와 동일한 진리를 갖고 있으며, 모든 종교적 신앙들은 서로에게 있어 대체로 동등하다고 단언하는 쪽으로 확대되곤 한다. 우리가 거부하는 것은 바로 이점이다.

우리는 이 같은 다원주의에 반대하면서 하나님께서 역사적인 나사렛 예수 안에서 확고하고 가장 뛰어나게, 그리고 규범적으로 활동하심을 선언한다. 그의 인격과 사역에서 예수님은 그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는 면에서 유일하시다. 영생의 성경적 의미인 구원,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 하나님과의 화해, 그리고 죄 사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 세계복음주의자협의회, 마닐라 선언

   

대중매체의 발달과 더불어 등장한 지금의 대중문화는 수동성과 오락성을 주무기로 삼는다. 그래서 사람들을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소외시키고, 그들 서로를 도덕적으로 고립시키며, 삶의 실재와도 유리되도록 만드는 경향이 강하다. 사람들은 외롭거나 따분할 때 주로 대중매체에 기댄다. 그러나 대중매체는 한번 습관을 들이면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경험을 해나갈 능력을 차츰 약화시켜버린다. 그래서 웬만한 자극에는 쉽게 감동받지도, 울거나 웃지도 않는다. 이런 습관은 그 자체가 증식하는 경향이 있어 중독의 악순환을 낳는다.

   

정보=진리 라는 등식 아래 모든 정보가 곧 진리인양 여기게 만드는 풍조가 확산되어갈수록 더욱더 요긴해진 덕목들이 있다. 진정한 창의성의 회복, 정보 자체의 습득보다 생각하는 훈련을 쌓게 하는 묵상의 회복, 스킨십과 관계 중심의 공동체 마인드, 몸을 드리는 말 그대로의 헌신 등이다.

   

개의 개 됨의 성질은 그 자체 속에 있다. 그러나 인간의 인간성은 그 자신 속에 있지 않고 인간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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