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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한 기독교, 마틴 로이드 존스

bangla 2016. 4. 16.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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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고 냉담하고 침착하고 조용한 그리스도인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진짜 독생자를 보내 십자가에 죽게까지 하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소리를 지르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격정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견딜 수 없이 동요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처럼 믿는 사람은 격정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격정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예수가 평화주의자로서 죽었고, 세상이 그를 이해하지 못해서 부당하게도 그를 죽이는 비극을 연출했다고 말하면 아마 믿을 것입니다. 그들도 거기까지는 괜찮게 생각할 것입니다. 아니, 괜찮게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름답고 놀라운 무언가가 있다고까지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말하며, "그것은 모욕적이고 비도덕적인"이라고 발끈할 것입니다. 또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 다고 말하면 욕설을 퍼부으며 싫어할 것입니다. 그는 중생의 교리를 가르치셨으며, 그가 오신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을 가르쳐 개선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위로부터 태어나게 하심으로-거듭나게 하심으로- 새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라고 말하면 이를 갈며 자신들을 모욕하지 말라고 덤벼들 것입니다. "우리가 그 정도로 악하단 말인가?" 하고 반발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사람들을 놀라게 만드는 하나의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놀라움과 경이감으로 사로잡는 어떤 것입니다. 사람들을 진정한 기독교 앞에서 "대체 이것이 뭐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언어를 어려워했습니다.

   

세상은 항상 참 메시지를 미워했으며 저지하고자 애를 써왔습니다. 사실 이것이 성경 전체의 줄거리 아닙니까?

   

기독교 신앙은 초자연적인 것이므로 기독교를 이해하거나 실천하는 데 굳이 똑똑한 머리가 필요치 않으며, 이 사실 자체가 역으로 기독교 신앙의 초자연성을 입증해 주는 좀더 심오한 증거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기독교 메시지의 역설이라고 입니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심오한 진리, 인간과 생명과 삶과 죽음, 우주,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진리는 지적인 노력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지 너희가 결단을 내려라. 그러나 그런 결단을 내린 이유에 대해 우리가 아니라 그분께 답변해야 할 것이다.

너희 스스로 판단하라. 그리고 그 결단의 결과를 감수하라.

   

인류의 문제는 단순히 게으르거나 나태한 데 있지 않습니다. 이처럼 자발적으로 정해진 목적 하에, 고의적인 살의를 품고, 조직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이런 세력의 존재를 보지 못한다면, 뉴스기사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혼란으로 이끄는 현대적 악의 전시물들 이면에서 악을 조직하고 있는 세력을 보지 못한다면, 여러분의 눈은 아주 먼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믿는 것을 반대합니다. 하나님의 법칙을 반대합니다. 인간은 법이라는 말 자체를 싫어합니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훈련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방식대로 자기 삶을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남들 역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작은 신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음이야말로 인격의 중심입니다. 마음에는 단순히 느낌과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것도 있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의 중심부, 거대한 중심부가 있습니다. 그 중심부가 모든 것을 통제하며, 그 중심부에서 모든 것이 나옵니다. 그것이 우리의 곤경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단순히 지적인 데 있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체계로도 능히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속에는 그 모든 것보다 더 깊은 것, 자기 지식을 짓밟고 어기고 거스르면서까지 뻔히 아는 잘못을 저지르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곤경입니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종교를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종교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경배하고자 애쓰며, 선하고 경건한 삶을 살려고 애쓰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사건에 나오는 일 같은 것은 단연코 거부합니다. 곧 살아계셔서 행동하시는 하나님, 형벌, 죽음과 지옥, 동정녀 탄생에 관한 놀라운 진리, 한 사람 속에 두 본성이 공존하는 신비,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이고 신적인 요소 같은 것은 전부 반대합니다. 그들은 이런 것들을 거부합니다.

   

마귀의 거짓말을 믿으면 항상 근시안 적인 된다는 점에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술을 마실 때는 행복하지만, 다음날 아침에는 비참해집니다.

성령은 죽음과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주십니다…. 원수 사탄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탄은 지금 유예기간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더 광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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