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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오스기니스(실존,지도,검증,다윈,쾌락,갈망,기쁨,탐구,힌두교,불교,구원,구도자) 본문

읽고 또 읽고/기독교

생명,오스기니스(실존,지도,검증,다윈,쾌락,갈망,기쁨,탐구,힌두교,불교,구원,구도자)

bangla 2016. 4. 1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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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오스기니스(실존,지도,검증,다윈,쾌락,갈망,기쁨,탐구,힌두교,불교,구원,구도자)

   

동구권에서 교회를 지도에 표시하지 않음, 그러나 실존함.

"그때 나는 앞에 보이는 많은 것들이 하나도 표시되지 않은 지도를 가지게 것이 때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초등교육을 거쳐 대학 교육을 마칠 때까지 나는 방대한 지식을 쌓으면서 인생을 안내해주는 지도를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인생에 필요한 중요한 내용들과 나의 가장 관심사에 대해선 아무런 정보도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삶은(unexamined) 가치기 없다. 소크라테스

   

예상 집행 계획서에 영원한 가치 항목을 집어넣는 것은 우리 시대의 정신이 아니다 -Simone Weil

   

어거스틴,단테, 구텐베르크,파스칼, 렘브란트,뉴턴, 바하,헨델, 윌버포스, 도스트예프스키, 엘리어트 서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와 문인, 예술가, 음악가, 과학자, 발명가, 시인, 개혁자 같은 많은 이들이 순수하고 깊은 신앙심을 소유한 사람들 이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높은 교양과 문명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일 수록 이러한 신앙을 무식한 사람들의 소양 쯤으로 취급하고 있다.

또한 낙태금지, 노예제도 폐지, 여성운동, 시민권 발달 등을 포함해 서구 사회에서 모습을 드러낸 대부분의 개혁 운동은 신앙에 의해 고무되었고, 신앙인들이 주도했다. 그런데도 신앙 자체를 낡은 유물 정도로 간주하는 것이 오늘날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이제 나는 아무리 놀라운 광경을 보더라도 이전처럼 그런 확신과 느낌에 사로잡히지 못한다. 달리 말해서, 나는 색맹이 되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자네가 메시아 편에 있다는 것이 기쁘네. 사실 말은 내가 다시 듣고 싶은 말이기도 하네, 하지만 예전처럼 말에 감격하기에는 영혼이 너무나 메말라 버렸어. 과학을 제외한 다른 영역에서 나는 마치 마른 잎사귀처럼 변해가고 있는 같아. 무시무시한 무저갱에 빠져 버렸나봐. 생각만 하면 답답하고 기운이 빠져버린다네. - 다윈

   

세차게 밀려드는 질문은 이전에는 의미 있고 타당했던 근거를 박살내고 자기 만족에 구멍을 뚫어 못쓰게 만든다. 그때 구도자가 탄생한다.

   

생명을 가진 존재 가운데 인간만이 유일하게 삶을 의식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삶에 대해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진정으로 강력함 힘을 지닌 사상들은 정확하게 말해서 자신을 정당화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달라스 윌라드

   

나는 어떤 종류의 쾌락이든 쾌락이 너무 과해서 죽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쾌락은 내가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깊고 강렬하고 압도적이기 때문에 나를 죽이고 것입니다. 쾌락을 완전하게 알고 나면 죽게 되는 것이 어쩌면 우리라는 존재가 가진 기본 특성일 것입니다. - 포컬트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죽음을 바로 앞에 두고 있고, 자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살아 있으며, 그것이 사실인데, 어떻게 죽음을 믿을 있겠는가?

   

인간은 진리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 -엘리어트

   

우리 인간에게는 진리와 시간과 죽음, 가지를 본능적으로 부인하고 싶은 두려움이 있다.

   

오늘날 유행처럼 퍼진 '심판에 대한 외면' 모순이라는 독사 둥지의 알을 감추고 있다. 우리는 날마다 도덕적 심판을 내린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심판은 심판을 내릴 사람 역시 심판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지만 동일한 도덕적 심판이 우리에게 가해지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삶의 중심에는 어떤 만족보다 갈망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갈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쁨을 맛본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세상의 어떤 쾌락과도 그것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루이스

   

살아야 하는 이유를 가진 사람은 어떤 방식이라도 대부분 참아낼 있다. - 니체

   

감각이 멈추면 갈망이 멈춘다.

갈망이 멈추면 애착이 멈춘다.

애착이 멈추면 존재가 멈춘다.

존재가 멈추면 탄생이 멈춘다.

탄생이 멈추면 노쇠와 죽음과

슬픔과 애통과 실망과 상실감이 멈춘다.

따라서 고통의 모든 공격이 멈추게 된다. -불경.

   

그리스도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모든 것을 하시리라 말씀하셨다. 그러나 부처는 너희는 먼저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하나도 필요 없게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흰두교, Radakrishnan 인간은 신의 일시적인 자기 망각이라고 말함.

Alan Watts 신이 무아경에 빠졌다가 돌아갈 길을 잃었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 역할을 하면서도 자신은 인간이 되었다고 느꼈다.

   

이상하게도 우리 모두는 내면에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지. 우리가 말하는 우정이란 것도 사실은 우리에게 있는 동일한 외로움을 다른 이에게서 발견한 것에 불과해. 그것은 같은 신들에 대한 비밀스런 예배야. -길버트 머레이.

   

인간은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는 원인들의 산물이다. 인간의 기원과 성장과 소망과 두려움, 그리고 사랑과 신념은 모두 원자의 우연한 배치에 따른 결과물일 뿐이며 따라서 어떤 열정도, 영웅주의도, 강력한 사상과 감정도 인간의 삶을 무덤 너머까지 지켜줄 없다.

   

나는 인류를 사랑한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 놀라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인류를 사랑하면 수록 개별적 인간, 다시 말해서 사람 사람에 대한 사랑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실 속의 실천적 사랑은 공상적인 것에 비해 가혹하고 두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런 ...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형제' 에서 조시마 신부

   

승리는 보다 많은 질문에 답하고 다른 관점들보다 좀더 많은 사실들을 짜맞춘 광범위한 이론을 가진 모델에게 돌아갔다.

   

세상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사실, 세상을 믿지 않으면서도 사랑하고, 세속화 되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염세주의가 가진 너무나 분명한 신에 대한 불경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낙관주의라고 불렀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시대에 존재하는 모든 낙관주의는 거짓이며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낙관주의는 언제나 우리가 세상과 어울린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낙관주의는 우리가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는 외진 보잘것 없는 촌부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서른이 때까지 목수로 지내다가 마지막 3 동안 순회 설교자로 살았다. 그는 책도 남기지 않았다. 직장에 들어간 적도 없었다. 가정을 이루지도 않았다. 자신이 태어난 지역을 멀리 벗어난 적도 없다. 위인들이 일반적으로 갖추고 있을 면들이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자기 자신 말고는 어떤 자격증도 없다. 무리들이 그에게 등을 돌렸을 그는 고작 서른 살이었다. 친구들도 그의 곁을 떠났다. 하나는 아예 그를 모른다며 부인하기까지 했다. 그는 원수들에게 넘겨졌고 조롱과 수모를 당하며 재판을 받았다. 그리고 명의 강도와 나란히 십자가에 박혔다. 죽음이 임박한 그의 십자가 밑에선, 사형 집행관들이 그의 유일한 땅의 소유물인 옷을 가지려고 제비 뽑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숨을 거두자, 동정심 많은 친구가 빌려준 무덤에 장사되었다.

   

진리와 그리스도는 궁극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분리될 없다. 결국 그리스도는 진리다. 진리와 증거가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할지라도, 사실은 그리스도가 진리의 근거이자 보증인일 뿐만 아니라, 또한 자유와 기쁨과 소망과 사랑과 인간성의 근거이며 보증인이라는 사실에 가려버린다. 결국 도스코예프스키가 굳게 믿었듯, 진리와 인간성은 오직 하나님께서 존재하실 때만 존재한다. 그리고 예수님보다 하나님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사자는 코와 눈과 귀로 사냥감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다리로는 사냥감을 잡을 있는 속력을 내죠. 몸에 있던 힘을 모아 가공할 위세로 뛰어오른 다음 발로 사냥감에게 일격을 가합니다. 사냥감이 쓰러지면 사자는 팔로 감싸 끌어당긴 다음 숨통을 끊어 자기 것으로 만듭니다. 이것이 사자가 사냥감을 죽이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람이 믿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신앙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말입니다. -마사이족 사냥꾼.

   

하나님께서 먼저 찾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을 찾을 없었을 것입니다. -어거스틴

   

선택의 순간에 구도자인 우리가 시도한 탐구의 정직성이 검증 받고 전면으로 드러나게 된다. 우리의 갈망을 진리에 일치시켜 확신을 갖거나 아니면 반대로 진리를 우리의 갈망에 일치시켜 빠져나갈 수도 있다.

   

Truth or Nothing이란 모토를 가지고 있는 구도자는 현대 신화에 정면으로 대항한다. 대신, 정직하게 평가된 우리의 경험은 성경적인 신앙이 가르쳐온 것들을 분명히 드러내준다. 인간인 우리는 본성적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갈망에 진리를 일치시키려는 전략은 비록 단기적으로는 쉽고 매력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훨씬 어렵다. 그런 전략은 우리에게 통제권을 갖게 해주긴 하지만 우리를 진리로부터 떠나게 하는 뜻하지 않은 장애를 불러온다. 또한 그것은 우리를 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때문에 끝없는 회피를 요구한다. 더욱 나쁜 것은 그런 전략은 우리를 사실과 진리에서 떠나게 하기 때문에 실망과 허탈감이라는 불가피한 결과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반대로 우리의 갈망을 진리에 일치시키는 결정은 단기적으로는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월하다. 우리는 통제권을 손에 넣으려는 욕심을 포기하고 우리 밖에 있는 진리에 굴복한다. 굴복은 회개를 요구한다. 우리의 현실을 우리의 계략에 맞추려고 하는 대신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 그러나 결국 진리는 자유이므로 장기적으로 우리는 자유를 얻는다.

요약해서, 우리는 이번 단계의 탐구에는 도덕적인 측면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에 보았듯이 구도자의 의미 탐구는 광부가 금을 찾으려는 것이나, 탐사자가 원유를 발굴하려는 것과는 다르다. 모두들 특정 목적을 추구하긴 하지만, 구도자에게는 성공적인 발견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성장하고 변화하려는 개방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키에르 케고르

진리는 덫이다. 걸려들지 않고는 얻을 없다. 당신이 진리를 붙잡는 방식으로 진리를 소유할 없다. 진리가 당신을 붙잡는 방식으로만 그것을 소유할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실제로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를 아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참된 진리를 찾는 것이며 내가 그것을 위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사상을 찾는 것이다.

   

탐구는 차제가 보상이다. 희망을 품은 여행을 계속하는 것이 어딘가에 도달하는 것보다 낫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여정은 목적지가 존재할 때만 의미가 있으며 본향을 향해 나아갈 때에만 희망에 여정이 가능하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은 방랑자가 아니라 여행자다. 그들은 여정을 가정 먼저 앞서가신 분을 알아가는 동안,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분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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