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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쓰신 글씨(마이클카드), 침묵, 여백, 창조, 예배, 예술, 창의, 목적, 자유 본문

읽고 또 읽고/기독교

땅에 쓰신 글씨(마이클카드), 침묵, 여백, 창조, 예배, 예술, 창의, 목적, 자유

bangla 2016. 4. 1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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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에 예수님의 행동은 침묵을 둘러싸는 테두리를 창조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말씀하실 때와 같은 종류의 고요함이었다. 요컨대 여백은 창조적 행위의 극치였고, 다른 아닌 예술이었다.

   

끄적이신 글의 형태나 심지어 내용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사실은, 순간에 소리를 멈추고 새로운 곳에 이목이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순간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세상이 단지 현존하는 세상만이 아님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유케 되었다. 또한 분명 예술이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것이다.

   

그것은 반응이기에, 내게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분이 말씀하신다. 그분이 행하신다. 그분은 아름다우시다. 우리는 반응한다. 우리는 창조한다. 우리는 예배한다.

   

그분을 부를 있는 이름이 있다는 , 이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창조적인 예배는 하나님의 벅찬 아름다움에 대한 적절한 반응의 하나이다.

   

사랑은 우리를 아름답게 한다.

   

아름다우신 하나님은 바로 사랑이시다. 그리스도를 통해 찾아오셨던 그분의 한량없는 사랑이 우리를 아름답게 만든다. 사랑의 발걸음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는 그분의 아름다움을 더욱더 갈망한다. 갈망 때문에 우리는 다시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가며, 이러한 예배는 새로운 창조성으로 우리를 부른다. 아름다움과 사랑, 이는 바로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가지 색깔의 광선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사를 잘못 사용할 여유가 없다. 성격은 대가가 얼마나 비싼지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은 시간 가운데 여백을 창조하도록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고, 그분의 아름다움을 우러르며 그분을 경배하도록 하는 여백 말이다.

   

하나님의 영이 움직이시면, 그분이 지나가신 곳에는 노래가 남는다. 특히 노래를 남기시는데, 노래들은 그분의 진리를 형상화하며 그분의 아름다움에 순종하는 반응이다.

   

상징과 비유와 이야기와 역설을 사용해서 우리를 상호 작용 가중데로 이끌어 준다. 상상력은 하나님에 관한 진리들을 전달할 있는 강력한 도구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궁극적으로 실패하지 않는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사로잡는단느 것은 두려움이나 사실, 감정이나 지식 이상의 차원을 포함한다. 우리는 예언서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현재 모습과 우리에게 기대할 있는 전부를 회복시키기 위해 나서고 계심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단지 마음이나 생각뿐만 아니라, '마음의 생각' '생각의 마음' 상상력을 회복시키기 원하신다는 뜻이다.

   

예술가적 창조자요 위대한 소설가이자 완전한 사랑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외치신다. 우리를 향해 노래하시고 예언자들의 환상을 통해 우리 마음에 영상을 그려 넣으신다.

   

별들이 노래한다.

   

결국 예수님도 북극성 같은 분이셨다. 이사야서에 따르면 역시 전혀 흠모할 만한 외모를 갖추지 않으셨다. 당시에는 그분보다 훨씬 눈부신 매시아적 스타들이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리에, 우주 가운데 동일한 자리를 요동치 않고 지키고 계셨다. 그분은 변함없이 우리를 부르신다. 뒤로 돌아서서 그분의 눈부시게 희미한 빛을 보라고 하신다. 여전히 빛은 지금 세상을 향해 빛나고 있다. 빛으로 향하는 길을 찾을 있도록, 그리고 빛으로 인해 삶의 길을 찾을 있도록 말이다.

   

진정한 성경적 겸손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진리를 깨닫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직 그분과의 관계만이 진정한 겸손을 가져다 줄수 있다.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 인지 진리를 아는 것이 우리를 자유케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하신 그것이 진리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뒤바뀌는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서 자유케 된다는 것은, 종이 되기 위해 자유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를 부여받기 전까지 우리는 자아의 , 죄의 종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자신에게서 해방되어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 위해 자유케 것이다.

   

'청중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보면, 공연장에 들어설 실력에 대해 괜찮은 느낌을 가진다. , 좀더 틀에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연주자는 아닐 테지만, 가장 형편없는 연주자도 아닐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모든 은사는 그것이 무엇이든 애당초 내게 주어진 것일 정작 것은 아니란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손해 것이 없다. 연주를 시작하면서, 자신에게 신경 쓰느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연주의 초점은 노래가 지닌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실력으로 최선을 다해 성실히 연주함으로써 하나님과 청중의 발을 씻어 주는 것이다. 이제 나는 다른 등식을 통해 유익을 얻는다. 바로 자기 사신을 잊어야 최선의 연주가가능하다는 등식 말이다.

   

중세 미술가들은 자기 작품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결코 없었다. 그들에게 예술은 은사였고,그들 자신 보다는 재능을 부여하신 하나님을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더. 그들은 자아의 횡포로 붙터 해방되어 그리스도 안에 안전하게 감추어져 있었다.

   

우리의 정체를 안다는 것은 겸손한 감추어짐이다.

이는 실로 우리의 소유로 보이는 타고난 소질들이 우리 스스로 만들어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다. 이는 또한 재능을 부여하신 목적이우리 스스로 주목받거나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니요, 애초에 은사를 주신 분에게 우리의 있는 최대의 창조적인 노력으로 감사를 표현하기 위함임을 믿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이 부여하신 재능에서 빠져서는 되는 부분은 노래하고 춤추고 그림을 그리는 기능적인 능력뿐 아니라 깊은 차원의 부르심이다. 부르심은 미적 가치 체계의 일부로 드러날 있는데, 미적 가치 체계란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결정하도록 돕는 체계를 말한다. 미술가는 같은 깊은 내면의 목소리에 이끌려 그림을 그린다. 음악가는 부르심의 차원을 드러내고자 곡을 쓰고 연주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주어진 비전은 이들에게 들을 있는 귀와 있는 눈을 선사한다. 그리고 순종의 반응을 요구한다.

"종종 각종 장애물과 씨름할 때면, 육체적 정신적 힘이 한꺼번에 소진되어 내가 이미 발을 들여 놓은 길에서 버텨내기 어려울 때면, 나는 안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을 느꼈다 ' 땅에는 행복과 만족 속에 사는 이들이 너무나 적고, 어디서나 슬픔과 근심이 그들을 쫓는다. 그러기에 언젠가 작품들이 샘물이 되어 근심에 시달려 이들에게 잠시나마 쉼과 회복을 있을 것이다. " 하이든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실로 예술적인 것은 없음을 더욱더 느끼게 된다. - 고흐

   

네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진정 보여 주고 싶다면 말이지 그녀의 말을 귀기울여 듣게나. 충고를 받아들였고,바로 그녀가 아내가 되어 20년간을 함께 지내고 있다.

후에, 내가 주님을 향한 사랑의 크기를 얼마나 그분에게 보여드리기 원하는지 깨닫게 즈음, 나는 충고에서 얻은 교훈을 주님과의 관계로 확장시켰다.

   

귀기울이는 것은 이야기할 시간과 공간과 자유를 갖도록 대화 가운데 열려 있는 여백을 제공하는 것이다.

   

상상력은 우리 내부에서 마음과 생각을 이어 주는 다리이자 영혼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상상력은 우리로 하여금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 느끼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의 창조성의 근원은 우리 마음에 넘쳐나는 것이며 경건한 삶의 결과이다.

   

하나님이 말씀을 하고 계시다면 그때는 듣는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치 않다.

   

창조력과 신앙과 상상력을 놀랍게 꽃피웠던 르네상스는, 대개 공동체들 또는 예술가들의 길드가 연합해서 이룬 결과였다. 다빈치와 미켈란 젤로, 그리고 사실상 다른 모든 이름 있는 예술가들이다 창조적 공동체나 길드의 결과물이었다.

   

고갱은 말한다. 무거운 짐을 옮길 때나 닻을 끌어 올릴 때면 선원들은 일을 멈추지 않고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모두 함께 노래한다고. 예술가들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빈센트 고흐

   

오직 하나님만이 무의 상태에서 무언가를 상상하고 만드실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나, 이런 의미에서 오직 그분만이 창조자라는 직함을 가질 있는 유일한 분이시며 우리는 단순히 창조적일 뿐이지.

   

그저 예술인이 되지 말고, 선한 장인이 되게나. 하나님은 언제나 내면으로 부터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시건만, 우리는 겉보기에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안은 지저분하건 말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게나.

   

모나리자나 타지마할 처럼 위대한 예술 작품이라도 하나님의 눈에 비치는 가치는 그것을 만든 자에 비해 없이 작다는 것을 기억하게나. 예술가들을 다른 사람보다 나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듯이, 작품이나 예술 자체의 가치를 그것을 만든 자보다 낫게 여기는 또한 그릇되다네.

   

도시 한구석에서 에이즈로 고통받는 방랑자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나 태아를 낙태로부터 살리는 일보다 모나리자를 파손에서 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면 자넨 엘리트주의에 물든 거라네.

   

아이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경이로움에 뿌리박고 자라나게 하게나. 능력의 말씀으로, 그리고 무한한 상상력으로 창조의 처음 며칠 동안 수천 가지 모양, 재질, 색깔, 그기로 소리를 뿜어내신 예수님에게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게, 그들이 이끌고 가면서도 그들에게 뒤쳐지지 않게 노력해야 하는 . 이것이 가장 흥미로운 교육의 역설이라네. 아이들의 믿음과 솔직함이 자네를 능가한다 하여 놀랄 필요는 전혀 없내. 무엇보다도, 자네가 예수님과 함께 세상을 바꾸려 한다면, 자네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아이들을 보살피시듯 그들을 보살피게나. -해럴드 베스트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피조물들을 아들 삼기 위해서 였다. 단지 사람을 낫게 만드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사람을 만들어내시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말이 점점 높이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날개 달린 피조물로 바꾸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순전한 기독교, CS 루이스

   

예술가들은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라네. 왜냐하면 그들은 창조성과 열정이 죽어가는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언어를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지.

   

예술가로서 자네의 성장은 하나님과 다른 이들을 감동 시킬 있느냐에 있지 않네. 그보다는 자네가 얼마나 유한한지를 이해하는 것에서 성장이 오는 걸세.

   

절대적으로 순수한 주목이 기도라네 -시몬느 베이유

   

훌륭한 예술은 십계명에 순종한다. - 에드가

   

1.하나님이 우리에게 재능을 주셨다면 우리는 재능을 창조적으로 사용할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창조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자유를 부여받았음을 의미한다. 자유 없이는 창조성이 없고, 자유 없이는 독창성도 있을 없고, 자유 없이는 어떤 예술도 없으며, 자유 없이는 심지어 기독교 신앙도 없습니다. 자유는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에 기초할 때에만,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사역을 통해 사람이 되고 성령을 받았을 때에만 존재할 있습니다. 이러한 기초 없이는 자유란 쉽게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의미하게 될지 모르며, 결과 구속받지 못한 인간의 죄성이 갈망하는 모두를 충족시키는 자유가 될지도 모릅니다.

   

자유는 능정적입니다. 그것은 전통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하고, 당신이 하는 일이 모두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느낌들로부터도, 예술에서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어떤 고정된 규칙들로부터도 자유로운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창조적이기 위해서는 모든 종류의 규칙과 기준을 깨뜨려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도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3.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일부인 예술에는 보편적 기준들이 있습니다. 만약 기준들이 없다면 예술은 의미 없고 공허한 이름이 것입니다.

   

4. 예술은 이웃에게 영원한 기쁨인 아름다운 것을 선사하는 것으로 자기 임무를 다한 것입니다. 예술은 바로 예술로 존재함으로써 우리의 , 생활의 기쁨, 우리의 인간됨의 깊이와 직접적으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외부의 인정이 따로 필요 없답니다.

   

그러나 만일 예술 자체 외에는 아무것도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삶과 현실을 연결하는 매듭들을 끊는다면 예술은 의미를 잃게 됩니다.

   

5. 오늘날 선하고 훌륭한 모든 것들로부터 배우고 우리 시대의 정신과 그릇된 예술 원리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반드시 현대 예술을 모든 방면에 걸쳐 넓고 깊게 연구해야 합니다. 현대 예술가들이 주장하며 말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들을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어법과 문법을 분석하고자 해야 합니다.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사랑하면서, 그들의 성과에서 배우고 그들의 실수를 피하고자 분석하고, 이해하고, 사랑으로 비판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 예술가의 임무입니다.

   

6.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술가는 자유롭습니다만, 그것은 목적 없는 자유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자유로운 것입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 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는지 이것을 생각하라.' 진정 인간적이고도 생명을 일으키는 이러한 원리들을 가능한 많이 실현하기 위해서, 일하고 기도하고 연구하는 것은 그에게 달려 있습니다. -H.R. 로크마커

   

내가 그리스도 만큼 실제적이기를 원하네.

   

예술가인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란, 복잡하고 세속화된 오늘날을 사는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에 비해 결코 쉽지 않다네. 왜냐하면 자네 스스로를 위해 일하고, 자네 보기에 옳고 적절한 것을 행하고, 대중 혹은 일류 예술계의 흐름이 어찌 되었건 무조건 뛰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혼란과 소란에서 자네를 구해 내기 때문이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상상력이 부족하고 어딘가 어려움을 가진 이웃들을 돕기 위해 자네들이 직업적인 상상가가 된다는 것을 뜻하지. 예술가라는 우리의 직업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깃듯 풍성한 의미와 미묘한 색조들을 느끼는 일에 계발된 이웃들에게 음성과 눈과 귀와 촉감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네.

   

자네들이 주어진 작은 영역에서 작은 차이를 드러내는 날마다의 은혜를 제공하는 성실하다면, 주님은 자네들을 장차 상황에서 섬길 있도록 준비시켜 주실 걸세.

   

구속적인 의미에서 예술가이 자네들이 과업은 사람들을 개종시키는 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바에 대한 변론하는 일도 아니네. 그리스도인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자신의 상상력을 통한 통찰을 그가 마주치는 이들 누구에게나 건네주는 것이라네. 그러면 성령님이 곳에서 그것을 취하신다네.

   

그리스도인 예술가들은 그들이 예술이 이웃을 향해 이야기하도록 만듦으로써 사회에서 예술을 소외시키고 전이시키는 이러한 통념이 극복되도록 도울 책임이 있다네. 이웃들에게 그저 그들이 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상상력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주게나. 그리고 인내를 가지고 주님을 섬기며 축복을 기다리게나.

   

예수님께서 가만히 두어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의 눈에서 향유를 닦아 내셨다. 그러고는 평소에 좀처럼 사용하시지 않던 단어로, 우리가 창조성과 예술과 상상력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절대 중심에 있는 단어로 아름답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저가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행하였도다.

   

그분은 우리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결코 우리를 찾아다니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신다. 그부은 시간속에 여백을 창조하시어 엄청난 대가를 지불한 그분의 초청을 우리가 듣고 경배로 가득한 반응을 기뻐하신다.

   

우리 주위에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나, 우리가 재능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시비를 거는 우둔하고도 침울한 집단이 존재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동참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상상력은 순간으로 인해 회복되는 중이고, 그들은 그들 자신 안에 채워져야 갈망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소수의 사람들은 우리의 세계가 단지 보이는 세계만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한다. 모든 일이 그리고 무한히 많은 일들이 머지않아 단번에 일어난다. 들음, 귀기울임, 느낌 , 이해함에서 모두 동시에 ㅁ라이다. 그리고 일들이 일어나는 동안 내내, 우리는 위에 끄적거린다.

   

   

   

창조성 키우기 : 실제적인 조언

   

1. 성경으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하라. 메시지가 충격적이건 위험하던 상관하지 말고 성경 말씀에 귀기울이는 자세를 개발하라.

   

2. 언제나 당신 자신에게서 떠나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라(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을 피하라). 당신 자신으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 감춰진 ' 되게 하라.

   

3. 결코 전달 수단이 메시지를 압도하지 않게 하라. 전달 수단은 메시지에 적절해야 한다. 메시지와의 상호 의존성이 반영되어야만 한다.

   

4. 이해 받지 못하는 위험을 감수하라. 언제나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 위험을 무릅쓰라.

   

5. 성경은 분노와 낙담에서부터 찬양과 경배에 이르기까지 인간 감정의 범위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솔직하라.

   

6.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공동체를 육성하고 공동체에 자신을 쏟아 붓기 위해 당신이 있는 모든 것을 하라. 공동체가 당신 자신의 교제권의 일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라. 당신의 교회 안에 그와 같은 것이 아예 없다면, 공동체를 세울 있도록 노력하라.

   

7. 당신이 창작한 것을 공동체와 나누라. 모든 명백한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다.

   

8. 겸손과 섬김과 전적인 순종에 대해 당신의 재능과 관련 지어 깊이 이해할 있기를 추구하라. 거기서 배운 것들이 당신 삶의 영역에 널리 스며들게 하라.

   

9. 창조성은 계절처럼 주기적일 있음을 기억하라. 창조적 활력이 넘쳐나는 봄철이 있을 있고, 암담한 추위가 엄습하는 겨울철도 있을 있다.

   

10. 당신이 지닌 가장 위대한 자유 중의 하나가 실패할 자유라는 것을 기억하라. 우리는 언제나 성공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다.

   

11. 당신이 스타나 유명인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을 결코 멈추지 마라. '우리의 문화는 각종 스타들에게 액면 이상의 절대적인 가치를 준다. 이것이 평범한 , 평범한 , 평범한 경험의 가치를 격하시키고 무력하게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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