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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사이에 둔 두 신학자의 대화, 빛 색깔 공기, 김동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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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사이에 둔 두 신학자의 대화, 빛 색깔 공기, 김동건

bangla 2016. 3. 2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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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매 순간에 우리의 실존이 달려 있지. 그 순간의 깨달음, 그 자체를 사모해야 한다. 공부를 하며 효용을 따지는 것은 이미 깨달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 외의 그 어떤 것이다. 이것은 진리를 향한 바른 자세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배우거나 공부할 때 어디에 써 먹을지를 염두에 두었고, 당장 활용할 수 없는 것에는 관심과 투자하기를 꺼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배우고 진리를 깨닫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두셨다.

   

이제 인간은 두려움 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해 나간다. 새로운 일을 할 만큼 그 일에 대한 노동의 존엄성과 도덕성은 따라오지 못한다. 그래도 뭔가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든다. 이 시대는 계속 새로운 것을 요구할 것이며, 인간들은 그 시대의 요구를 따를 것이다. 참으로 '위험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한계는 깨졌다. 이제 새로운 것을 만들다가, 만들다가, 더 이상 어떻게 주체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할 것이야.

-그러면 인간은 더 이상 어떤 것도 새롭지 못한 순간을 만나겠군요.

이는 결국 인간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시대가 온다는 뜻이지.

   

하나님의 기적적은 은혜라! 병이 낫는 것도 하나님의 기적이지만, 주님이 부르실 때 그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기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리면, 꼭 낫도록 기도해야 하는 줄 안다. 그런데 주님의 마지막 부름을 순종하며 잘 받아들이는 것도 역시 은혜이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과거에 내가 마음대로 죽음을 택할 수 있다면 고통 중에 죽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의미로 암으로 죽는 것도 좋겠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막상 지금 당하고 보니 좀 후회가 된다. (웃음) (여전히 웃으시면서 어머니를 향해) 당신은 암 안 걸리도록 기도하시오.

   

"아버지가 고생은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인간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한 편생을 정리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것 같다. 아픈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하나님을 증거하였으니, 평소 전한 것을 아픈 동안 몸소 보여준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너희 아버지가 암 걸린 것도 감사하다. 다 주님의 뜻이 있었던 것 같아. 이젠 그저 고생 덜하고 지금 자는 모습 그래도 주님이 데려가시면 좋겠다."

가족들 사이에는 아버지가 암에 걸린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걸리는 시간과 방법이 서로 달랐다. 아마 아버지가 가장 빨리 이 사실을 받아들인 것 같다.

   

너희는 일절 상복을 입지 마라. 그냥 평상복으로 입도록 해라. 깨끗한 정장 차림이면 된다. 유족의 표시를 위해 꼭 필요하다면 넥타이 정도는 공동으로 준비해도 괜찮겠지. 그러나 검은색으로 하지는 마라. 기독교인들은 죽음을 삶 속에서 그냥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것이다야. 인간적으로 슬프겠지만 터져 나오는 듯이 울거나 곡을 하지는 마라. 믿음도 소망도 없이 모든 것이 끝난 사람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부조를 받지 않도록 해라. 가족들에게 다소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인지는 모르겠구나. 나는 목사로서 평생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살았다. 사람들을 번거롭게 장례에 참석하는 것만도 미안한데, 부조까지 받아 부담을 주고 싶지 않구나.

마지막으로 장례예배에 대해 말하니 잘 기억해 두어라. 장례예배의 모든 절차는 하은규 목사에게 맡긴다. 이 사람 저 사람 와서 형식적으로 순서를 하나씩 맡는 것이 뭐가 좋겠니?

장례 예배 때 죽은 자를 위한 일체의 조사나 약력을 소개를 하지 마라. 매우 단순하고, 은혜 넘치는 예배 외에는 어떤 것도 추가하지 않도록 해라. 나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부족하고 부끄러운 삶을 살았어. 철저하게 죄인으로 살다가 간다. 하나님 앞이나 사람들 앞에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언제 태어나서, 무슨 공부를 했고, 어떤 직함을 가졌고, 이런 것들을 너절하게 늘어놓아서는 안된다. 이런 것들이 싫어서 묘비에 목사 칭호도 뺏다. 내가 무슨 내세울 것이 있느냐? 내 시신을 앞에 두고 추모사를 읽고, 약력을 나열하며,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말한다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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