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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본문

읽고 또 읽고/실생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bangla 2022. 8. 3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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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이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는지요? “딱 한 가지야.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 그리스 사람들은 진실의 반대가 허위가 아니라 망각이라고 했어요. 요즘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잊어서 그래요. 자기가 한 일을 망각의 포장으로 덮으니 어리석어요. 부디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
    2022-02-18 09:19:32
  • 동양의 탄생학과 서양의 유전학은 동시에 말하고 있어요. 뱃속에서의 10개월이 성격, 기질, 신체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고. 스승이 10년 가르친 게 뱃속에서 가르친 10개월만 못하다잖아. 그래서 지혜로운 한국인은 태중의 아이를 이미 한 살로 보는 거예요
    2022-02-18 09:01:58
  • (미소 지으며)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게.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 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촛불도 마찬가지야. 촛불이 수직으로 타는 걸 본 적이 있나? 없어. 항상 좌우로 흔들려. 파도가 늘 움직이듯 촛불도 흔들린다네. 왜 흔들리겠나?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야. 나무들이 흔들리는 것도 원래의 자세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네. 바람이 없는 날에도 수직의 중심으로 가기 위해 파동을 만들지. 그게 살아 있는 것들의 힘이야.”
    2022-02-18 08:23:34
  • 뱀은 전체가 꼬리야. 연속체지. 그게 아날로그일세.” “아하! 뱀이 아날로그면 디지털은 뭐죠?” “디지털은 도마뱀이야. 도마뱀은 꼬리를 끊고 도망가. 정확히 꼬리의 경계가 있어. 셀 수 있게 분할이 되어 있으면 그게 디지털이야. 아날로그는 연속된 흐름, 파장이야. 반면 디지털은 계량화된 수치, 입자라네. 이 우주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즉 입자와 파장으로 구성돼 있어. 더 쉽게 얘기해볼까? 산동네 위의 집이라도 올라가는 방법이 다르지. 언덕으로 올라가면 동선이 죽 이어져서 흐르니 그건 아날로그야. 계단으로 올라가면 정확한 계단의 숫자가 나오니 그건 디지털이네. 만약 언덕과 계단이 동시에 있다면 그게 디지로그야.”
    2022-02-17 15:16:38
  • 돈의 비극이 딴 게 아니야. 돈의 교환가치가 언어의 교환가치, 피의 교환가치를 침입할 때 이 3대 평행선이 부딪혀 충돌할 때 비극이 생기는 거야.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노래를 가르치지 말고 ‘황금은 황금으로 보고, 돈은 돈으로 보고, 사람은 사람으로 보라’고 가르쳐야지. 우리나라 말처럼 좋은 게 없어. 돌고 돌아 돈이라고 하잖나. 엊그제 재벌 회장에게 충성을 바치던 돈이 그다음 날은 거지에게 갈 수도 있어. 돈에게는 주인이 없거든. 그날 들어간 주머니의 명령을 따를 뿐. 복잡하지 않아. 중요한 건 다 단순해. 눈, 귀, 코…… 다 단음절인 것처럼 돈도 단음절이야. 복잡할수록 천한 거라네
    2022-02-17 15:14:00
  • 그래서 불행해지는 거야. 돈은 돈의 교환을 해야지. 피의 교환을 하면 안 되는 거거든. 자기는 첫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은데, 부모는 부잣집에 시집보내려고 하잖아. 드라마에서 맨날 그런 얘기하더구만. 하하. 피의 교환과 돈의 교환은 경계가 다른 건데, 돈의 교환으로 피의 교환을 하고 언어의 교환을 하려 들면 비극이 생겨. 3대 교환은 서로 제 갈 길이 있는 거야. 황금은 황금의 길, 피는 피의 길, 언어는 언어의 길. 제 각자의 길을 열어줘야 하네. 언어 교환도 돈이 명령하면 서글퍼져. 나는 이렇게 쓰고 싶은데 출판사는 저렇게 쓰라고 하면 작가는 의욕을 잃어버리거든.
    2022-02-17 15:13:20
  • 전주에서 강연하고 백락병풍과 화조병풍을 사서 서울까지 싣고 왔어. 그런데 관심의 포인트는 달라. 병풍을 산 건 그 형태 때문이야. 그렇게 크게 접는 가구의 형태는 서양에는 없는 구조지. 완전히 접어도 완전히 펴도 병풍이 아니야. 반쯤 지그재그로 접혀진 모습, 그 음양의 모습에 반한 거라네. 병풍, 산맥, 계단…… 그 형태를 상상해보게. 다 접혀 있는 것들이잖아. 들락날락 무한반복이지.”
    2022-02-17 15:10:27
  • 한번은 내가 ‘자네 비디오 작품들 고장 나면 어떻게 해? 진공관 부서져’ 했더니 그러더군. ‘부서져야지. 영원히 안 남기려고 폐품 주워다 하는 거야.’ 예술가의 마지막은 쓰레기통이라는 거지. 사라져야 해. 그것을 화랑에 들이고 박물관에 진열하고 경매하고, 그건 상품이지. 그런 것들이 나하고 통했어.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고 못하는 것들을 백남준은 했지. 수성펜으로 몽고반점 그리고 뮌헨공대 가서 대학생들 앞에서 엉덩이를 까보였지. 몽고에 가보면 텅 빈 초원만 남았다고. 자긴 그렇게 사라지는 예술을 하고 싶다고. 보통 사람은 못해. 뉴욕 한복판에 바이올린을 개처럼 끌고 가는 그런 퍼포먼스를 누가 해? 경찰이 미친 사람인 줄 알고 쫓아올 것 다 알면서.
    2022-02-17 15:07:48
  • 고난 앞에서 네거티브로 가면 인간은 짐승보다 더 나빠져. 포지티브로 가면 초인이 되는 거야. 인간이 저렇게 위대해질 수도 있구나
    2022-02-15 17:13:26
  • 인생은 파노라마가 아니야. 한 커트의 프레임이야. 한 커트 한 커트 소중한 장면을 연결해보니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거지.
    2022-02-14 21:28:20
  • 이 컵을 보게. 컵은 컵이고 나는 나지. 달라. 서로 타자야. 그런데 이 컵에 손잡이가 생겨봐. 관계가 생기잖아. 손잡이가 뭔가? 잡으라고 있는 거잖아. 손 내미는 거지. 그러면 손잡이는 컵의 것일까? 나의 것일까?
    2022-02-14 16:31:39
  •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도 들어. 자식은 부모에게 자연스러운 보살핌을 받고 자라야 하는데, 인위적으로 떼어놓으니 때로는 그 반작용의 힘으로 대단한 문명을 만들어내는구나. 그런데 그렇게 자연스러움을 거슬러 인위성, 인공적인 힘으로 만들어낸 문명이 과연 인간에게 잘 맞는 옷일까? 생각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시대를 열었고, 중세 암흑기에서 생각의 빛을 통과해 근대로 왔는데, 그게 진정 인간을 위한 흐름이었을까?”
    2022-02-14 15:43:06
  • “그 현장으로 가보자고. 그게 쇼라는 걸 누가 몰라. 만약 진짜 그랬다면 솔로몬은 바보야. 대중을 바보로 아는 거지. 동양에서는 똑같은 상황에서 어린애를 양쪽에서 잡아당기라고 했어. 아파서 애가 우니까 진짜 어머니가 본능적으로 팔을 놨겠지. 그걸 본 왕이 ‘아이의 아픔에 반응한 네가 진짜 어미다’라고 판결한 거야.
    2022-02-14 12:33:30
  • 남자들만 느낄 수 있는 고독의 신호가 있다네. 파이브 어 클락 섀도five o’clock shadow라고 들어봤나? 샐러리맨들이 오후 다섯시가 되면, 깨끗했던 턱 밑이 파래져. 퇴근 무렵, 면도 자국에서 수염이 자라 그림자가 생기네. 그게 오후 다섯시의 그림자야. 매일 쳇바퀴 돌듯 회사에 나와 하루를 보내다, 문득 정신 차리면 오후 다섯시. 수염 자국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워지면 우수가 차오른다네. 오늘 뭘 했지? 내일도 또 이렇겠지. 다시 전철을 타고, 술집에 가고, 이윽고 집에 돌아가 아내를 만나고…… 그게 샐러리맨의 고독이지.”
    2022-02-14 10:00:55
  • 첫째 제자, 너는 수제자이니 1/2을 가져라. 둘째는 열심히 했으니까 1/3을 가져라. 막내는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으니 1/9을 가져라.’ 그런데 스승이 떠나고 보니 낙타가 열일곱 마리야. 아무리 해도 유언대로 나눌 수가 없는 거야. 열일곱을 어떻게 나눠. 이때 지나가던 사람이 참견을 해. ‘이보시오. 내가 낙타 한 마리를 줄 테니 거기 보태서 나눠보시오.’ 그랬더니 열여덟 마리가 돼서, 첫째 제자는 1/2인 아홉 마리, 둘째 제자는 1/3인 여섯 마리, 막내는 1/9인 두 마리를 나눌 수 있었다네. 아홉 마리, 여섯 마리, 두 마리, 셋이서 열일곱 마리를 공평히 나눠가진 후 나머지 한 마리는 행인이 다시 돌려받아 갔어. 어떤가?” “한 마리 허수를 넣어야 계산이 되는군요.”
    2022-01-17 18:15:07
  • 귀의 형태는 들락날락이 비정형이고 랜덤해. 일종의 카오스지. 소용돌이야. 사람의 인체는 모든 게 정돈되어 있는데, 귀와 배꼽만 정돈이 안 돼 있어.
    2022-01-17 15:11:53
  • 한국인들은 운이 좋아. 중국 일본보다 훨씬 창조적이야. 사이에 있는 반도라서 빛을 발했네. 이름 지을 때 보면 알아. 중국 사람들이 지은 도시 이름은 다 두 자야. 북경, 남경. 몇천 년을 두 자에서 못 벗어나지. 암흑, 명암, 선악 전부 두 자에 가둬. 길어야 사자성어, 네 자뿐이야. 중화민국, 그걸 우리가 본딴 게 나라 이름인 대한민국이야. 한자 문화권에 있는 일본도 동경, 교토, 나라…… 사각의 틀에 갇혀 있어서 자유롭게 꿈틀대지 못해. 한국은 그래도 삼랑진이니 조치원이니, 융통성 있는 지명이 체면을 살렸지만.”
    2022-01-17 12:47:08
  • “토리노 광장에서 얻어맞는 말이 예수야. 채찍질 당하고 허적대는 늙은 말. 그게 십자가를 메고 가는 지저스 크라이스트Jesus Christ지. 그러니까 가서 말의 목을 끌어안고 엉엉 울었던 걸세. 자기가 늙은 말하고 무슨 관계가 있겠나? 가까우면 마부하고 가까워야지. 그런데 니체는 그때 인간의 대열에 끼는 게 창피해서 인간을 거절했다네. 인간에서 벗어나려고 한 게 초인이거든.
    2022-01-17 12:44:19
  • “미쳐서 죽었지요. 광인으로 떠나지 않았습니까?” “사건이 있었어. 토리노 광장에서. 우체국으로 편지 부치러 가다가 늙은 말이 채찍질을 당하는 걸 본 거야. 무거운 짐을 지고 끌고 가려는데 길이 미끄러우니 계속 미끄러지지. 마부에게 채찍질을 당하는 늙은 말을 보고, 니체가 달려가서 말 목을 끌어안고 울었다네. 자기가 대신 맞으면서 ‘때리지 마. 때리지 마’ 하고 울다가 미쳤지. ‘어머니 저는 바보였어요’라고 마지막 말을 웅얼거리고는 십 년간 식물인간처럼 살다 죽은 거야. 그게 그 유명한 ‘토리노의 말’이지. 그게 바로 니체에게 다가온 신의 콜링이라네.” “무슨 말씀인지요?”
    2022-01-17 12:44:01
  • “나는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야. 오히려 에고이스트지. 에고이스트가 아니면 글을 못 써. 글 쓰는 자는 모두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쓰는 거야. 자기 생각에 열을 내는 거지. 어쩌면 독재자하고 비슷해. 지독하게 에고를 견지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만인의 글이 되기 때문이라네. 남을 위해 에고이스트로 사는 거지.”
    2022-01-17 12:39:57
  • 이 유리컵을 사람의 몸이라고 가정해보게나. 컵은 무언가를 담기 위해 존재하지? 그러니 원칙적으로는 비어 있어야겠지. 빈 컵이 아니면 제 구실을 못 할 테니. 비어 있는 것, 그게 void라네. 그런데 비어 있으면 그 뚫린 바깥 면이 어디까지 이어지겠나? 끝도 없어. 우주까지 닿아. 그게 영혼이라네. 그릇이라는 물질은 비어 있고, 빈 채로 우주에 닿은 것이 영혼이야. 그런데 빈 컵에 물을 따랐어.” 보이차를 따르는 소리가 청량하게 들렸다. 여기 유리컵에 보이차가 들어갔지? 이 액체가 들어가서 비운 면을 채웠잖아. 이게 마인드라네. 우리 마음은 항상 욕망에 따라 바뀌지? 그래서 보이차도 되고 와인도 돼. 똑같은 육체인데도 한 번도 같지 않아. 우리 마음이 늘 그러잖아.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지.” “네. 날씨처럼 변하는 게 감정이지요.” “그런데 이것 보게. 그 마인드를 무엇이 지탱해주고 있나? 컵이지. 컵 없으면 쏟아지고 흩어질 뿐이지. 나는 죽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내 몸은 액체로 채워져 있어. 마인드로 채워져 있는 거야. 그러니 화도 나고 환희도 느낀다네. 저 사람 왜 화났어? 뜨거운 물이 담겼거든. 저 사람 왜 저렇게 쌀쌀맞아? 차가운 물이야. 죽으면 어떻게 되나? 컵이 깨지면 차갑고 뜨겁던 물은 다 사라지지. 컵도 원래의 흙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러나 마인드로 채워지기 이전에 있던 컵 안의 void는 사라지지 않아. 공허를 채웠던 영혼은 빅뱅과 통했던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거라네. 알겠나?” 컵 하나로 바디와 마인드와 스피릿, 현존과 영원을 설명하는 이어령 선생님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토록 심오한 이야기를 이렇게 간단하게 풀어버리다니! 스승은 풀피리 불 듯 말을 이었다. 영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유리컵 안의 빈 공간을 인정하지 않는 거라고.
    2022-01-17 12:3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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