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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복음이다, 존 파이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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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복음이다, 존 파이퍼

bangla 2016. 6. 2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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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복음이다
국내도서
저자 : 존 파이퍼(John Piper) / 전의우역
출판 : IVP 200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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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나님은 복음이다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바는 복음의 최고이자, 최선이며, 궁극적이고, 결정적인 선 - 이것 없이는 다른 어떤 선물도 선하지 않다.-은 우리가 영원히 누릴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란, 가장 깊고 지속적인 만족을 주시는 그분 자신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하시려는 하나님의 헌신이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빼앗을 권리나 갈망이 전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러한 권리와 갈망을 주기 위해 구속의 계획을 세웠다.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 표현은, 죄인들이 하나님께 다가가는 권리를 얻고 그분의 임재를 영원히 기뻐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그분의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해 죽고 다시 살아나게 하신 것이다.

   

천국을 위해 더 많이 준비되는 것만큼 이 땅에서 한 인간을 쓸모 있게 하는 것이 없다. 이것이 사실인 이유는 천국을 위해 준비되는 것은 주 예수를 보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 것을 의미하며, 주님의 영광을 보는 것은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더 많이 닮는 것만큼 이 세상을 복되게 하는 것은 없다. 세상은 그리스도를 닮은 우리의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를 볼 것이다.

   

하나님의 칭의에 대한 고백은 삶의 중심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교회의 설교를, 믿음 생활의 존재와 진보를, 인간의 안전에 대한 뿌리를,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인간의 시각을 규정한다. -G.C. 벌카우어

   

   

우리는 그분의 영관 때문에 그분을 높이지만, 그 영광이 겸손과 결합되기 때문에 그분을 훨씬 더 높인다.

우리는 그분의 초월 때문에 그분을 높이지만, 그 초월이 겸양을 수반하기 때문에 그분을 훨씬 더 높인다.

우리는 그분의 타협하지 않는 공의 때문에 그분을 높이지만, 그 공의가 긍휼과 조화되기 때문에 그분을 훨씬 더 높인다.

우리는 그분의 위엄 때문에 그분을 높이지만, 그 위엄은 온유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분을 훨씬 더 높인다.

우리는 그분의 하나님과의 동등함 때문에 그분을 높이지만 그분에게 하나님과의 동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있기 때문에 그분을 훨씬 더 높이다.

우리는 그분이 모든 선한 것에 너무나 합당하기 때문에 그분을 높이지만, 이것이 악을 참아내는 놀라운 인내를 수반하기 때문에 그분을 훨씬 더 높인다.

우리는 세상에 대한 그분의 주권적 통치 때문에 그분을 높이지만, 이러한 통치가 순종과 복종의 옷을 입었기 때문에 그분을 훨씬 더 높이다.

우리는 그분이 그분의 지혜로 교만한 서기관들과 맞서신 방법을 좋아하지만, 그분이 아이들처럼 단순해져서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실 수 있으셨기 때문에 그 방법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이 폭풍을 잔잔케 하실 수 있었기 때문에 그분을 높이지만, 그분은 사마리아인들을 하늘의 불로 치시거나 자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는 데 그 능력을 사용하길 거부하셨기 대문에 그분을 훨씬 더 높인다.

   

본래 자기 중심적인 인간의 마음은 영적 아름다움을 볼 수 없기에 그 아름다움을 믿을 수도 없다. 이것은 육체적 무능이 아니다. 마치 인간이 마음속에 행동하고 싶은 열망은 간절하지만 행동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이것은 도덕적 무능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은 너무나 자기 도취적이어서 무엇이 자신의 교만을 꾸짖을지 알지 못하며, 다른 사람을 높임으로써 자신에게 기쁨을 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려면 깊은 영적 변화가 필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계시하는 것이다.

   

영생: 하나님을 아는 기쁨을 확대하고 완전하게 하는 것

   

미래의 우리 복이 그분이 계신 곳에 우리도 있다는 데 있으며 그분의 영광을 본다는 데 있다면, 복음에 계시된 그 영광을 미리 지속적으로 묵상하면서 그 마지막 때까지 그 영광을 봄으로서 동일한 영광으로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것 만큼 그 곳에 이를 준비를 더 잘하는 게 있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하나님 중심적인 사랑은 타락한 인류에게, 특히 우리들 대부분처럼 수십 년 동안 자존감이라는 교리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는 낮선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중심으로 삼는 사랑의 정의에 빠져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누군가를 중시한다는 것이 사랑에 대한 자연적이며 인간적인 정의다. 이것은 사랑처럼 느껴지는 중요한 이유는 중시 여김을 받으면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 칭찬과 자아의 관계는 섹*와 육체와의 관계와 같다. 우리가 영적으로 죽어 있는 한 칭찬을 통해 나아지는 것은 없다.

   

사랑이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히 보고 또 맛보도록 돕기 위해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든 하는 것이다. 사랑은 항상 하나님을 그 중심에 둔다.

   

질문

  • 내가 그리스도처럼 강하길 원하는 것은 나 자신이 강한 자로 높임을 받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우주에서 가장 강한 분이신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보다 못한 즐거움에 안주하라고 유혹하는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기 위해서인가?
  • 내가 그리스도처럼 지혜롭길 원하는 것은 나 자신이 지혜롭고 지적인 자로 높임을 받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참으로 가장 지혜로우신 분을 알고 높이기 위해서인가?
  • 내가 그리스도처럼 거룩하길 원하는 것은 나 자신이 거룩한 자로서 높임을 받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거룩을 보고 도 맛보지 못하도록 막는 거룩하지 못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기 위해서인가?
  • 내가 그리스도처럼 사랑하길 원하는 것은 나 자신이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서 높임을 받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모든 만족을 주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확대하며 고난 가운데서라도 그렇게 하길 기뻐하기 위해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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