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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치유자, 헨리 나우웬 본문

읽고 또 읽고/기독교

상처입은 치유자, 헨리 나우웬

bangla 2016. 4. 1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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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설교는 대부분, 인간이 자신을 의미 있는 역사적 존재로 본다는 전제 조건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그 전제 조건에 따르면 과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셨고, 현재 우리 안에 살고 계시며, 미래에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오실 것입니다.

   

단편화된 이데올로기 때문에, 핵 인간은 하나의 사상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거나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는 광신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가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경험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매우 관대합니다. 왜냐하면 신념이 다른 사람을 위협으로 여기기보다는, 새로운 사상을 발견하고 자신의 사상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는 랍비, 목사, 사제 등의 말에 주의를 기울일지도 모릅니다. 그 사고 체계를 받아들이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산의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경험을 심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에게는 세속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 Teilhard de Chardin

   

결국 기도의 사람이란 다른 사람에게서 메시아의 얼굴을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이며, 숨겨진 것을 드러내고, 구체적으로 잡지 못하던 것의 실체를 파악하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기도의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구체적 이유는, 그가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정확하게 표현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혼란으로부터 빠져 나와 그들도 명료하게 인식하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의 긍휼을 통해, 사람들이 배타적인 내부 집단을 벗어나 전인류의 넓은 세계로 나아가도록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비판적인 묵상을 통해, 이 세대의 강박적인 파괴성을 다가올 새 세상을 위한 창조적 사역으로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해리슨 씨가 두려워해던 것은 단지 수술 중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맞이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함으로써 생을 마감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두려워했습니다. 물론 헤리슨 씨가 두려워했던 것이 그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분명 그 이상의 것이 있었습니다. 헤리슨 씨는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기다려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한 온전한 정신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정말로, 인간의 정신은 그 육체가 쇠약한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육체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임종을 눈앞에 둔 어머니는 아들을 보기 전까지는 생사와의 투쟁을 포기하지 않고 숨을 이어갑니다.

   

크리스천 리더쉽의 기본적인 원칙

첫 번째 원칙은 개인적 관심인데, 이것은 동료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을 것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두 번째 원칙은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삶이 힘든 시기에도 변함이 없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세 번째 원칙은 항상 내일을 기대하는 적극적 소망입니다. 그 소망은 죽음의 순간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 모든 원칙들은 한 가지 확신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동료인 인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한 번에 하나씩 자산의 상처를 싸매고 계셨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어야 할 때, 즉시 도움을 줄 준비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이미 다른 사람을 도울 준비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찢기심으로써 건강과 해방, 그리고 새 생명의 길이 친히 되어 주셨기 때문에 앞서 소개한 이야기는 새롭게 풍성해졌습니다.

   

외로움… 그 상처는 우리 존재의 표면에 깊이 새겨져서 끊임없이 아름다움과 자기 이해의 원천이 됩니다.

   

기독교적 삶의 방식은 외로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을 보호하여 값진 선물로 소중히 간직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때로 우리는 인간이 느끼는 기본적인 외로움과 직면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외로움에 대한 뼈아픈 인식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고, 존재의 경계 너머에 있는 것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외로움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지키고 간직해야 할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외로움은 우리의 내적 공허함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것이 잘못 이해되었을 때는 파괴적일 수 있지만 그 달콤한 고통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에게는 약속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의 개념을 영적 노출증의 옹호로 잘못 이해하거나 오용할 가능성도 매우 높습니다. 설교 중에 목회자가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를 무작정 이야기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누군가 자신도 그와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고 해서 도움이 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나도 당신처럼 우울증과 혼란, 그리고 불안에 시달리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런 영적 노출증은 그렇지 않아도 믿음이 약한 사람의 믿음을 더 약화시키며,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하기는커녕 그들을 더울 편협하게 할 뿐입니다. 노출된 상처는 악취를 풍길 뿐 치유의 능력이 없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치유의 원천으로 삼는다는 것은 개인적인 고통을 피상적으로 공유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의 아픔과 고통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깊은 인간의 상태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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