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esign your brain

믿음은 행동이 증명한다, 쉐인 클에어본 본문

읽고 또 읽고/기독교

믿음은 행동이 증명한다, 쉐인 클에어본

bangla 2016. 4. 16. 20:40
728x90

크리스천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rocks(록스타 ㅜㅜ) 소리칠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세상이 네 영혼을 도적질하지 못하게 하라.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예수를 선택한다는 것이며, 목숨을 걸고 대담한 어떤 것을 하겠다고 결단하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크리스천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가르쳤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가르치지 않았다.

   

어떤 부인이 심야 무료급식을 타기 위해 사람들 속에 섞여 애쓰는 것을 보았다. 몸싸움을 하면서 급식을 타야 할 정도로 배가 고팠느냐고 묻자 그녀는 "그건 아니랍니다. 제가 먹을 게 아니에요. 저쪽에 노숙자 할머니가 계신데 사람들과 싸울 힘이 없어서 제가 대신 타다 드리는 거예요."

   

한번은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노숙자 소녀를 만나 이다음에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 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가게 주인이 될 거예요" 라고 대답했고, 그 이유가 뭐냐고 묻자,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줄 수 있잖아요."라고 대답했다.

   

캘커타, 칼리하트에는 시체 안치소가 있다. 그곳에 발을 들이면 한쪽 벽에 "나는 천국으로 갑니다!"라고 글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고, 다시 몸을 돌리면, "그곳에 가도록 도와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는 현판이 걸려있다.

   

진짜 무신론자는 이 가난한 사람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 도로시 데이

   

나는 이적이 예수님의 능력이 표현이 아니라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테레사 수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몇몇 언론사 기자들이 인터뷰를 요청하며 그녀의 정신이 오래 지속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솔직히 테레사 수녀님은 오래 전에 죽었습니다. 그녀의 삶을 예수님께 드렸을 때 이미 죽은 것입니다. 이 세상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사랑과 기쁨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그분의 사랑만이 영원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예수님 말씀 중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은 돋보이게 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무시해버리라고 하나님께서 형광펜을 발명하신 것은 아닐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는 무엇을 하느냐 보다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확신했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에 아무 관심도 없어요. 제 주요 관심사는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겁니다. 저는 하나님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해요!"

   

나는 '열심히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고 자신하는 설문 참가자들에게 예수께서 가난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셨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응답자 가운데 80%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다시 그들에게 가난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2% 미만의 응답자들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 우리가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예수님을 흠모하고 또 예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설교하셨던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서도 예수님의 설교에 갈채를 보내고 또 그 설교를 반복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서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받들고 있다. 나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비극이, 부유한 크리스천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모른다는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면 그들이 나를 성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배고픈 사람들에게 왜 배가 고픈지 물으면 그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른다." - 까마라 주교(Camara)

자선에는 보상과 갈채가 따른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리면 죽임을 당한다. 자선을 베풀었다는 이유로 십자가에 달리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회질서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주장하는 예수님의 사랑을 따라 살면 십자가에 매달린다.

   

우리를 성자라고 부르지 말라. 우리는 그렇게 간단히 처리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 도로시 데이

   

주님의 멍에는 메기 쉽다. 그러나 결코 편하지 않다. 만일 삶이 편안하다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잘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테레사 수녀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단순하지만 결코 편하지 않다. 아플 때까지 사랑하라. 그리고 더 사랑하라." 라고 말하곤 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파송을 받은 선교사가 아니었다. 예수님은 가난했다.

   

초대교회 크리스천들은 배고픈 이웃들에게 줄 만한 음식이 없을 때, 모두가 나눠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음식을 마련할 때까지 교회 전체가 금식을 했다. 그들은 어떤 어린이가 굶고 있는 데 어떤 어른이 배불리 먹는 것은 살인죄에 해당한다고 말하곤 했다.

   

오늘의 교회가 마약과 물질주의와 폭력과 전쟁의 문화에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을 빼앗긴 것이, 그들을 즐겁게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맹렬하게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복음을 너무 어려운 것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편한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젊은이들은 모험을 추구하며 영웅적인 것을 하기를 원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웅장한 온라인 게임과 군대에 매료되는 게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 젊은이들이, 안전하게 죽음에 도달할 수 있도록 발끝으로 조심스럽게 걸으라고 가르치는 교회에 무슨 매력을 느낄까?

   

크리스천은 문제를 만드는 사람, 불확실성을 창조하는 사람, 사회와 양립할 수 없는 차원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자끄 엘룰

   

사람들이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아요."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어떤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한다. 그러면 그들은 비난하는 하나님, 율법의 하나님, 판단의 번개를 내리치는 하나님,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는 부자들의 하나님, 따분한 회의의 하나님에 대해 한결 같이 말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대답을 들을 때마다 "나도 그런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창녀와 이야기한 적이 없어."

"들어봐, 예수님이 창녀와 이야기한 적이 없는 이유는 창녀를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야.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들을 만났고 또 그들을 미친 듯이 사랑하셨어."

   

한 꼬마가 길을 가다가 이웃집에 불이 난 것을 보았다. 꼬마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호스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재빨리 가져가 그 집 마당의 수도꼭지에 연결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불을 끄다가 아주 이상한 장면, 괴상하고도 별스러운 장면을 목격했다. 주변에는 소방차와 소방관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방관은 한결같이 깊이 잠들어 있었다. 꼬마는 결정해야 했다. 광포한 불을 끄기 위해 작은 호스를 갖고 혼자 발버둥 치는 헛수고를 할 것인가, 아니면 호스로 소방관들의 얼굴에 차가운 물을 뿌려서 모두 힘을 모아 불을 끌 수 있도록 깨울 것인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