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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또 읽고/경영

정문술의 아름다운 경영

bangla 2016. 4. 1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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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난 놈이 왜 자꾸 떠드나. 그래서 노추 아닌가. 하지만, 먼저 기업을 경영해 본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 걸 어쩌나. 크게 된 놈으로서 떠드는 게 아니라 크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 떠들고 싶은 걸 어쩌나.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

처음 기업 경영에 뛰어든 내게 교과서나 바이블 따위는 없었다. 내가 교만했기 때문이 아니다. 사업 경험도 전무했고, 관련 공부를 해본 적도 없으며, 경제신문에조차 관심을 둔 적 없었던 일개 공무원이었기 때문이다. 아는 게 없으니 확신이 있을 턱이 없었다. 덜컥 회사를 만들어놓으니 무언가 잘못 돌아가는 건 분명한데, 그 원인은 커녕 사태의 본질조차 모른 채 좌충우돌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내가 우연히 집어든 것이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녀석의 도덕교과서였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정직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성실해야 한다, 솔선수범해야 한다,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따위의 너무나 뻔하고 따분한 경구들이 그 안에 잔뜩 나열되어 있었다.

그 하찮은 순간이 내 경영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줄곧 초등학교 도덕교과서가 시키는 대로만 회사를 운영하려고 애썼다.

   

제 것이 아닌 걸 얻지 못했다고 섭섭해한다면 자식이 아니라 도독놈들이지요.

   

'더구나 직원과 주주들은 아직도 나를 원하고 있지 않은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가 다시 아차 싶었다. 늙어 추해지는 게 이토록 순간이구나.

하지만 번민보다 외로움이 먼저였다. 어떤 결론을 내리든 주변 사람들은 내 결정에 무조건 따라 줄 것이었다. 순전히 혼자만의 문제였고, 스스로와의 싸움이었다.

   

"아버님께서는 저희에게 정신적인 유산을 남겨주셨습니다. 저희는 언제까지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할 겁니다."

   

그저 직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고, 그 놀이터를 지켜 주고, 그들이 방해받지 않도록 외풍을 막아 주고, 심부름이나 해주는 게 내 역할이라 여겼다. 그게 소위 관리직의 고유업무라 여겼다. 그래서 함부로 간섭하지 않았고 그들이 지치지 않도록만 애썼다.

   

버림은 소유의 끝이 아니라 소유의 절정이다.

   

나는 청지기와 같은 사람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재화 중의 일부를 잠시 관리했던 사람이다. 내 것 아니었던 것을 도로 내놓았으니 이제 홀가분할 뿐이다. 내 것 아닌 것을 내놓았다고 아까와하는 건 옳지 않다. 나는 전혀 아깝지 않구나. - 손자의 '아깝지 않으세요'라는 말에 하루를 넘어 생각하다가, 손자에게 전해주라며…

   

아이들은 벌에도 쏘여 보고 지렁이도 죽이면서 바람을 맞고 커야 하는 법입니다.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쉼 없이 몰아쳤지만 아이들이 그만큼 똑똑해졌습니까? 그건 교육이 아니라 사교육입니다. 아이들은 짐승이 아니에요. 현명치 못한 사랑은 아예 폭력이지요.

   

며늘 아가, 가족이라서 더 안 되는 거다. 네가 나랑 회사구경을 갔다 치자. 이렇게 크고 멋진 회사가 아버님 거라니, 우리 집은 정말 부자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지 않겠냐? 회사는 그렇게 망하기 시작하는 법이다. 그래도 꼭 가야겠냐?

   

저는 사업가입니다. 저는 사업 초기부터 지켜 온 원칙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사적인 일로 회사 돈을 유용하지 않습니다. 둘째, 절대 친인척을 회사에 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셋째, 힘있는 곳을 무조건 멀리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연구개발과 판매활동을 통해서 기업의 가치를 키우려 하지 않고 권력과 가까이 하여 이권을 챙기려 든다면, 그 기업뿐 아니라 이 사회도 결코 건전한 생산활동을 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믿자고 주장하면 처음엔 그 저의를 의심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신뢰가 아름다운 것은 그 특유의 전염력 때문이다.

지금도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수돗물을 믿고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수돗물은 그만큼 안전하고 청결해진다.

   

나는 누구 못지 않게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인연이란, 모든 것을 그 관계 안에서만 풀고 해결하려는 막무가내의 '연고' 또는 '인맥' 과 다르다. 내게 '인연'이란 관계에 대한 성실함이자 사람에 대한 예의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 성실과 예의다.

   

의미심장한 정보를 발견하면 자와 칼을 들고 직접 스크랩을 한다. 매일매일 스크랩한 문서의 내용 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으면 다시 펜으로 밑줄을 친다. 그리고 나서 도움이 될 만한 부서나 관련업체에 팩스로 보내준다.

   

사실, 신문 말고도 길목은 도처에 깔려 있다. 시시껄렁한 주말연속극 속에도, 술자리에서의 대화 중에도 길목은 분명히 존재한다. 물론 긴장과 집중력만 잃지 않는다면 말이다.

   

젊은이들은 '앞'만 보고 가지만 늙은이들은 '앞뒤'를 볼 줄 안다. 이건 일종의 역할분담이다. 이 역할분담이 깨지다 보니 젊은이들은 무작정 코뿔소처럼 달린다. 그러나 제지를 당하면 Why not 하며 눈을 부릅뜬다. 과정의 의미나 가치는 안중에 두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의 젊은이들에겐 교양과목도, 군대도, 직장생활도, 모두가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들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 있다. 닳고 닳은 말이지만 얼추 살아본 사람이면 누구나 절감한다. 헌데 이 말을 해주는 어른들이 너무 없다. 고루한 늙은이 대접을 받기가 싫은 것이다.

   

오동나무는 세 번 잘라 줘야 하는 법이네. 기를 죽여야 크게 자라지. 비전이 없는 게 아니라 필경 자네 눈에 안 보이는 걸세. 참고 버티게.

   

"어째서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현역의 젊은이를 존경한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모든 행동과 결정에 자기 희생을 전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또한 경영에 있어 공익과 정직을 최고 이념으로 생각합니다. 사람을 구하는 데 있어서 능력이나 경력보다는 철학과 태도를 중요시합니다. 그렇게 일단 믿고 받아들인 사람이라면 진정한 동업자로 대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 석 자만큼 확실한 브랜드는 다시 없었다.

   

내가 듣기로 제주도에서는 다금바리도 좋지만 그보다 나은 게 북바리요, 북바리보다 나은 게 또 솔치하 합니다. 내가 여기서 사흘 정도 묵을 예정인데 맛이라도 한 번 보여 주실 수 있겠소?

….

나는 급한 마음에 셋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라는 솔치회부터 한 점 입에 넣었다. 복어회처럼 쫄깃하면서도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풍미가 대단했다… 다른 것을 먹으니… 영 시답잖았다.

급하고 경솔한 마음에 모처럼의 입맛을 망친 셈이었다.

   

"자네가 지금까지 말했던 것처럼 진정으로 우리 회사를 신뢰하는 마음에서 입사를 지원한 거라면 당장의 욕심을 조금만 버려 주게. 꿈으로 남겨두어야 할 몫까지 처음부터 한꺼번에 요구하는 것은 회사 뿐만 아니라 자네에게도 별로 득이 될 게 없네. 억지로 미래를 앞당기면 마음도 빨리 늙게 마련이네. <미래산업>은 절대로 자네 몫을 가로챌 마음이 없네. 다만 그 순서를 지키고 싶을 뿐이네."

   

골프 '폼 하나만은 그럴 듯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조롱이 분명하지만 나는 그 소리가 싫지 않다. 늙어서 비로 더디긴 할지라도 '바른 순서대로' 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늘, 우리 뒤에는 온실이 있고 앞에는 정글이 있다. 온실은 안락하고 정글은 위험하다. 하지만 온실에는 발전이 없고 정글에는 가능성이 있다. 온실은 자기만족이거나 복지부동이다. 정글은 거칠지만 무궁무진한 모험이자 투쟁이다. 나는 '기꺼이 손해보는 사람'이라는 세간의 평에 만족한다. 벤처는 뒤를 돌아보는 순간, 더 이상 벤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직원들의 눈물을 지켜보면서,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더 이상 외국사람들에게 밥 사주지 마세요. 그들이 살 겁니다."

   

"열 댓명씩 출장을…"

정 - "큰물에서 안목을 키워야지. 좋은 생각이구먼"

"부부 동반으로 2등석을 타고"

정 - 바빠서 휴가들도 못 챙겨먹을 텐데 거 참 잘됐네. 얼른 출장비 2인분씩 내줘"

"고작 열흘만 기다리면 일본에서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부품을 두세 배나 더 주고 서울에서 구입… "

정 - 급하게 필요했겠지. 원래 벤처는 시간이 생명 아닌가.

"의료 지원금 명목으로 금이빨 해 넣는 것 까지. 불임크리닉… 청구서까지…"

정 -하하, 재밋구만. 그냥 다 해줘 버려

"회식이다. 접대비다. 여자들 팁까지 법인카드로..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정 - 정말 못 참겠나?

"도대체게 말이 안 됩니다."

정 - 그럼 자네가 나가게.

   

내가 <미래 산업> 대표로 있는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본 해고 통지였다. 당시 나를 바라보던 재무이사의 원망 어린 눈초리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너무나 충직한 사람이었고, 사실은 그 때문에 파격적인 대우로 스카웃한 고급인재였다. 직분에 충실했기 때문에 해고되어야 한다니 그로서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나는 그에게 넉넉한 퇴직금과 승용차, 그리고 나의 개인 돈으로 별도의 위로금을 마련해 주었다. 결코 실책 때문에 해고되는 것이 아님을 그런 식으로라도 알려주고 싶었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사람아. 나라고 마음이 좋아서 마냥 참고 잇는 줄 아나..'

그를 보내고 나서 나는 전 직원에게 보약을 지어 주라고 지시했다. 제멋대로 하는 것도 좋지만 건강만은 꼭 챙기라는 뜻이었다. 수시로 임계점까지 오르내리는 내 다급한 성격에 대한 일종의 경고이기도 했다. 참기 힘들 때는 오히려 원인을 부추기는 것도 인내의 한 방법이었다.

   

그들은 불과 3년 만에 마운터를 만들어냈다.

   

'잘 됐군. 그런 바깥사람도 우리 회사로 오라고 하지. 비슷한 업무를 줄 테니 거기보다 더 낫게 대우해 준다는 조건으로 설득해 보게.' 천안으로 이사가면서 여직원에게… 1명 빼고 다 이동함.

한국인의 주요 동인은 신명이다. 굿이 그렇고 풍물놀이가 그렇고 우리의 노동이 그렇다. '이 사람이라면 따라가다가 죽어도 좋다'는 확신만 생기면 어디라도 따라나설 수 있는 게 한국사람들이다.

나는 사람들로부터 오로지 이 신명을 끌어내기 위해 종종 불합리한 결정을 한다.

   

<미래산업>의 초창기 시절, 사장으로서의 나의 주된 업무는 공장청소, 관공서 수발, 부품 구매였다. 엔지니어들이 현장에서 생산과 개발에 열중하는 동안 사장이 살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내 것을 자꾸 버리고 스스로를 낮출수록 존경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렇게 배워 갔다.

친인척을 병적으로 멀리한 것도 직원들로 하여금 사장과 회사를 진심으로 믿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기들이나 선임자들은 모두 내게 든든한 빽이 있는 것으로 알았지만 사실 그 빽의 정체는 호기심이었다.

   

물론 '이용하고 반항하는 단계'에 고착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청난 손해를 본다. 하지만 '진짜 내 사람'하나는 엄청난 손해 이상의 가치가 있기에 나는 반복되는 시행착오를 멈추지 않았다. 누가 보기에도 명백히 손해나는 짓 을 나는 곧잘 했다. 앞으로 밑지고 뒤로 득 되는 장사를 체질적으로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벤처 기질이랄 수 있을까.

   

우리는 후방지원부대야. 싸움은 엔지니어들이 하는 거야. 현장에서 해달라는 거 군소리 말고 다 해줘. 괜히 관리직이라고 어깨에 힘주거나 까다롭게 굴면 당장 쫓겨날 줄 알아.

   

코스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자기 회사 자랑을 많이 해야 한다. 그래서 과장도 해야 하고 때론 거짓말도 해야 한다. 그게 우리의 상식이다. 하지만 나스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단점부터 늘어놓아야 한다. 가장 먼저 회사가 안고 있는 고질적이거나 잠재적인 리스크 요인부터 상세히 공개해야 한다. 만약 회사가 책정한 리스크 목록에 누락된 요인 때문에 주가가 떨어진다면, 발행사가 투자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나스닥 규정 때문이었다. 굳이 감추려고 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리스크 요인들까지 억지로 찾아내야 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지하도 입구에서 어느 남루한 어미가 젖먹이를 안고 구걸하고 있다고 치자. 그 춥고 배고픈 손바닥 위에 나는 동전 한 닢 내려놓지 못한다. 그들에게 한 닢 동전이 얼마나 요긴할 줄 잘 알면서도, 죽을 날이 가까워 하나님께 바치는 아부만 같아 나는 그대로 지나치고 만다. 그리고 그 심란한 광경을 뇌리에서 잊기 위해 다른 관심사를 애써 찾는다.

아내는 그런 점에서 나와 닮았다. 생생나는 일, 아니 생생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모든 일을 잘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음을 두 눈으로 보고 알면 절대로 가만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기 혼자 오래 두고 속을 끓이는 성격이다. 그리고 결국은 다른 곳에서 큰 일을 내고 만다.

은퇴를 하고 난 후 한번은 아내가 제법 큰 돈을 내놓으라며 졸랐다. 은퇴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매달 내놓는 200만 원 생활비 말고는 돈 달라는 소리 한번 없던 순둥이 아내였다. 하루는 밥상머리에서 눈을 내리깐 채 내게 대뜸 이런다.

"저도 이제 쓰면서 살아야겠으니 돈 좀 줘요."

"갑자기 무슨 돈?"

"글쎄, 여러 말 말고 해줘요. 필요한 데가 있으니."

"얼마나?"

"5억만 해줘요."

….

"뭐 급하게 필요한 데가 생겨서 썼어요."

"벌써? 얼마나?"

"다요."

"그걸 다 써? 어디다?"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자 아내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아니, 허구헌날 신문에 이름 나는 부잣집 마나님이 그깟 돈도 한번 마음대로 못 써요!"

이러다가 본전도 못 건지겠다 싶어 답답한 채로 입을 다물고 말핬다.

   

그리고 다시 한 달이 지났을까. 몸살 기운이 있어 오후 일찍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시장을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거실 탁자 위에는 미처 정리되지 않은 우편물 뭉치가 어지럽게 노여 있었다. 심상하게 뒤적여 보니 개봉된 편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육필로 정성 들여 쓴 편지라 더 관심이 갔던 것 같다.

   

"20년이 넘도록 저희 맹인선교사업에 물심양면으로 도와오신 정성을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 수술비가 없어 백내장 수술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수술비로 30만 원씩 1차로 우선 200명을 선정했습니다. 기부하신 돈으로 총 660명을 시술할 계획입니다. 회원님의 뜻에 따라 수혜자들에게는 '익명의 기부자'라고만 밝혔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언론 보도자료도 생략했습니다."

   

남을 위해 무슨 일을 하건 신과 내가 알면 그뿐이다. 아내는 내에게 까지 비밀에 부쳤으니 실로 지독한 마음가짐이다. 그나저나 남은 3억은 또 어니 썼을까. 심통까지 부려가며 내 주머니를 털어 남 몰로 보시를 하다니, 엉뚱하다는 점에서 아내는 나를 닮았다.

   

이제야 많은 것을 버릴 줄 알게 된 우리 내외에게도 한때는 속수무책으로 번민만 하던 나날이 있었다. 그때도 역시 모든 것을 버리려고 했었지만 지금처럼 평화로운 버림은 결코 아니었다. 그 혹독했던 시절을 동반자살까지 결심하며 나와 함께 버텨준 아내였지만, 나는 이제껏 아내에게 고맙다는 내색조차 한번 해보지 못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미래산업>의 성공에 가장 큰 보탬을 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아내였다. 가족들의 삶까지 포기해야 할 만큼 무모하기 짝이 없던 남편을 매일 보면서, 어찌 하고 싶은 말이 없었겠으며 만류하고 싶은 때가 없었겠는가. 아내의 침묵과 순종이야 말로 내 모험심과 배짱의 진짜 배후였고 뒤심이었다.

   

기사 중간에...

"말도 못하게 서운했지요. 그래도 평소 소신대로 행동하셨잖아요. 비록 제 남편이지만 정말 위대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뒤늦게 깨닫는 사랑이라 이렇듯 매순간이 감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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