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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기도하라, 상처(매듭) 본문

읽고 또 읽고/기독교

예수님처럼 기도하라, 상처(매듭)

bangla 2016. 4. 1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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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할때 우리는 흔히 우리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최대의 피해자는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 안에 하나님이 형상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그를 위해 못박히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지나친 자기 사랑 때문에 용서하는 대신 미워하는 방종을 선택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성렬을 슬프게 하는 중대한 범죄입니다.

   

문제는 상처 자체가 아니라 상처가 아물지 못하게 하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미워하는 죄입니다. 우리가 계속 괴로운 것은 상처 자체 때문이 아니라 상처보다 훨씬 크신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맛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미워하는 죄에서 떠나지 못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세가지 입니다. 첫째는 미워하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죄인지를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둘째는 그렇게 사람을 용서하지 못함으로 받은 자신의 영혼의 황폐함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용서하시기 위해 어떻게 고난을 받으셨는지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권위는 두가지 기초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진리이고 하나는 사랑입니다. 만약 우리가 가르치고자 하는 대로 진리를 따라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이 권위의 기초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진리를 따라 살기만 외에 다른 아무 요소가 없다면 사람들은 우리 앞에 무릅꿇고 배우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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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도가 하나님을 설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우리를 맡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동행이 지금 무척 힘들어 하는 것을 알고 있겠지? 그래서 아버지가 사랑한다는 증거로 오토바이를 사주었단다. 하지만 아버지가 동생을 사랑하는 만큼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네가 믿어주었으면 좋겠구나"

   

부자와 가난한사람의 불평등이 심화된 세계에서 하나님이 가난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염려하신다는 것을 편애의 증거로 보아서는 안된다. 이것은 사람의 징표일 뿐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이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다. 많은 도움이 필요한 곳에 하나님이 많은 관심을 보인다는 뜻이다.

   

"여러분의 돈은 필요치 않습니다.내게는 여러분의 손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여기에 남아 내가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눠 주는 일을 도와 주겠다면, 도움은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 하나님의 왕국에서나 들을 있을 법한 말이었다. 뉴섬은 이런 독지자들의 진심을 동안 지켜본 후에야 그들의 재정 지원을 받아들였다.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왕국을 땅에 세우고 싶어하는가, 아니면 죄책감이나 우월감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인가를 살펴보았던 것이다.

   

십자가의 수난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였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왕국과 하나님의 뜻에 애닿 우리의 저항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십자가는 땅의 왕국들이 추구하는 권력과 폭력과 살육의 생생한 증거였다. 그리고 부활은 땅의 왕국들이 결코 승리하지 못하리라는 하나님의 선포였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 하나님은 누군가를 부르실 그에게 가서 죽으라고 명령하신다"라고 말했다.

   

"이기적인 대상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쏟더라도 사랑이 완전한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사랑이 행위에 대한 보상이나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이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가령 사랑받는 사람이 사랑을 자기중심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사랑을 주는 사람은 결코 만족할 없을 것이다." 토마스 머튼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6:8

   

용서가 인간의 타고난 성품이라 생각하면 커다란 오해이다. 용서의 은총은 결코 우리 안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용서는 세상의 악에서, 그리고 우리 내면의 악에서 우리를 구원해 분에 대한 응답이다.

   

예수님의 기도를 암송할 때마다 나는 때는 약속이 기억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약속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목사가 내게 물은 , 결혼한 순간부터 기쁠 때나 슬플때나 부자일 때나 가난할 때나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의무를 충실히 지키겠다는 약속이었다. 물론 약속을 지키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려고 애쓸 부부간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축북이었다.

   

17세기 수도사 로렌스 : 하나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과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수련법을 찾아 많은 책을 읽어보았지만 내가 구하는 것을 찾을 없었다. 그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을 뿐인 나에게 그런 책들에서 소개된 방법들은 난해하게만 여겨졌다. 이때문에 나는 모두에게 모든 것을 나눠 주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하나님과 나만이 있는 것처럼 살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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