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esign your brain
유럽 도시 기행 1, 유시민 본문
728x90
반응형
- “sokakta hayat var(길 위에 삶이 있다).”
2023-08-28 15:52:52 - 블루 모스크에는 미나레가 6개나 된다. 미나레의 수는 자미를 만든 사람의 지위에 따라 달라지는데, 술탄의 자미는 4개를 세우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블루 모스크에 메카의 카바 신전과 맞먹는 수의 미나레를 세웠으니 논란이 생기지 않았을 리 없다. 그래서 아흐메트 2세는 메카 성전에 미나레를 하나 더 세워 7개로 늘렸고, 블루 모스크는 유일하게 미나레가 6개인 이슬람 사원이 되었다. 미나레는 개수뿐만 아니라 높이도 자미의 지위를 드러내는 지표였다.
2023-08-28 15:32:47 - 로마는 전성기를 다 보내고 은퇴한 사업가를 닮았다. 대단히 현명하거나 학식 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뛰어난 수완으로 돈과 명성을 얻었고, 나름 인생의 맛과 멋도 알았던 그는 빛바랜 명품 정장을 입고 다닌다. 누구 앞에서든 비굴하게 행동하지 않으며 돈지갑이 얄팍해도 기죽지 않는다. 인생은 덧없이 짧으며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때 거두었던 세속적 성공에 대한 긍지를 버리지는 않는다. 로마는 그런 도시인 것 같았다.
2023-08-28 15:24:57 - 트레비 분수는 로마에서 제일 크고 관광객을 가장 많이 끌어모을 뿐만 아니라 ‘돈이 마르지 않는 샘’이기도 하다. 관광객들이 오뉴월 꽃밭의 꿀벌처럼 분수 주변에 모여 동전을 던져주는 덕에 가톨릭 자선단체는 해마다 20억 원이 넘는 돈을 얻는다.
2023-08-28 15:07:50 - 가리발디는 단순한 군사 영웅이 아니라 확신에 찬 휴머니스트이자 투철한 공화주의자였다. 노예제 폐지에 대한 신념이 불확실하다며 링컨 미국 대통령의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정도로 강력한 신념의 소유자였던 그는 모든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정치 개혁을 추진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철폐하는 입법을 시도했다.
2023-08-28 15:06:40 - 다신교 시대에는 만신전이었고, 기독교 국교화 이후에는 예배당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르네상스 이후 교황청의 권력이 약해지자 국립묘지 역할이 덧붙여져 화가 라파엘로를 비롯한 예술가들과 에마누엘레 2세 등 권력자들의 관이 그곳에 안치되었다.
2023-08-28 15:01:10 - 로마군단은 방패와 창과 양날 단검으로 무장한 100명 단위의 백인대, 백인대 여섯을 모은 대대, 10개 대대를 유기적으로 편재한 군단을 핵심 전력으로 삼고 투석병과 보급병 등 지원부대를 결합한 구조였는데 백인대장은 노련한 병사가, 대대장은 선출 지휘관이, 군단장은 전직 고위급 정치인이 맡았다. 전성기에 25개 군단 30만 명이나 되었던 군인들은 월급을 받으면서 20년 정도 복무했고 제대할 때는 퇴직금을 받았다.
2023-08-28 14:54:33 - 로마군단의 전투 대형은 아테네 중장보병과 비슷했지만 군대를 활용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점령지를 일시적으로 약탈하고 돌아왔던 아테네군과 달리 로마군단은 점령지에 장기 주둔하면서 도시를 건설하고 조세를 징수했다. 로마 정부는 총독을 파견해 점령지를 다스렸고, 점령지와 로마를 직선도로로 연결함으로써 반란을 신속하게 진압하는 데 필요한 물류 인프라를 구축했다.
2023-08-28 14:53:53 - 로마의 부는 거의 전부 약탈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부를 약탈하고 지배력을 유지하는 방법이 달랐기 때문에 로마의 패권은 아테네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었다.
2023-08-28 14:53:31 - 다만 터키에서는 불에 구운 것을 무엇이든 케밥이라고 하는 반면, 아테네에서는 다진 고기로 만든 ‘떡갈비 꼬치구이’만 케밥이라 하고, 나머지는 모두 수블라키라고 한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는 있다.
2023-08-19 15:27:09 -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리스 음식은 ‘수블라키’일 것이다. 나무 꼬치에 끼워 구운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양고기 토막을 둥글고 납작한 피타 빵, 감자튀김, 샐러드와 함께 먹는 이 꼬치구이는 이름만 다를 뿐 터키의 케밥과 같다.
2023-08-19 15:26:50 - 아테네 시민들의 삶은 정치적으로도 순탄치 않았다. 1967년 파파도풀로스 대령이 쿠데타를 일으켜 세웠던 군사정부가 1973년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아테네의 대학생들을 탱크로 짓밟는 만행을 저질렀다.
2023-08-19 15:24:57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