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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기술, 추억의 관한 모든 것, / SERICEO 북리뷰 콘텐츠

bangla 2016. 9. 1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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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기술


기원전 5세기쯤 그리스에서 대회연장 한 곳이 붕괴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참사 소식을 접

하자마자 달려온 피해자 가족들이 어디엔가 묻혀 있을 가족의 시신을 찾으려고 무너진 건물

더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반지, 옷가지, 신발 등 신원을 확인할 수 있

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찾아내려고 혈안이었다. 참사가 일어나기 바로 몇 분 전, 키오스의 시

인 시모니데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귀족 스코파스를 찬양하는 시를 읊고 있었다. 시를 읊고

나자 심부름꾼이 다급히 다가와 밖에 젊은이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불러냈고, 시모니데스가

밖으로 나가려고 문지방을 넘는 순간 쿵 하면서 대연회장 지붕이 내려앉았다. 방금 까지 웃

고 떠들던 곳이 연기와 적막만 가득했고, 사람들은 매몰되어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신이 되

었다. 게다가 누가 매몰되어 있는지조차 확실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바로 이때 시모니데스

는 눈을 감고 붕괴 사고 직전으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먼저 산산이 조각난 대리석 파

편을 짜 맞춰 기둥을 올리고 폭삭 주저앉은 벽면을 일으켜 세웠다. 또 무너진 건물 잔해 사

이로 튀어나온 나뭇조각을 조립해 탁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참사가 일어날 줄은 꿈에

도 모른 채 대연회장을 찾은 손님들이 앉아 있던 자리를 둘러봤다. 탁자 윗자리에 앉아 즐

겁게 웃는 스코피스, 그의 맞은편에 앉아 수프에 빵을 찍어 먹는 동료 시인, 능글맞게 웃고

있는 귀족이 눈에 선했다. 기억이 여기에 이르자 시모니데스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

가족의 생사를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유족들을 데리고 무너진 건물 잔해 위로 올라가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에 고인들이 앉아 있던 자리로 안내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바로 이때 기억

술이 태어났다고 한다. 키케로가 연설문을 암기하고 중세학자들이 책을 통째로 암송하기 위

해 사용했던 2,500년 된 기억법인 것이다.

미국에는 ‘메모리 챔피언십’이란 대회가 있다. 선수들은 몇 분 만에 수십 개의 이름, 수천

개의 숫자를 외우며 대결을 펼친다. 이를 취재하던 기자 조슈아 포어가 에드 쿡이란 선수에

게 물었다. ‘언제 천재라는 걸 깨달았나요?“ ”천재라뇨?“ 제 기억력은 평범해요. 누구나 이렇

게 할 수 있어요.”이 말에 흥미를 느낀 조슈아는 챔피언 출신의 에드 쿡의 도움으로 훈련에

들어갔다. 에드는 ‘기억의 궁전’이라는 기술을 알려 주었다. 원리는 간단하다. 외울 내용을

재미있는 장면으로 바꿔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하려면 시각이미지와 공간을 활용해야 한다.

가령 ‘베이커’라는 이름을 외울 때 방 굽는 사람을 떠올린다. 머릿속에 친숙한 공간 즉, ‘기

억의 궁전’을 그린 뒤 장면들을 쌓아 두고, 필요할 때마다 그곳을 거닐며 꺼낸다. 이 기억의

궁전은 진짜 궁전이나 건물일 필요는 없다. 크든 작든 실내든, 실외든 실존하는 것이든 가상

의 것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한 장소와 잇닿아 있어야 하고, 눈에 선할 만큼 친숙한 곳

이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첫 번째 기억의 궁전으로는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 좋다, 그 다

음, 기억해야 할 사실이나 대상들을 생생한 이미지로 바꾼다. 이때 이미지는 재미있고 외설

스럽고 색다르게 만들어야 기억에 오래 남는다. 공간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구석구석에 그

이미지들을 보관한다, 그것들을 떠올리고 싶으면 그 기억의 궁전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조슈아는 장보기 목록을 외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장보기 목록을 기억하고 싶다

면 각 장소에 이미지를 놓아둔다. 마늘 피클, 훈제 연어, 포도주 여섯 병, 물안경을 생생한

이미지로 바꿔 어릴 적 살던 집 곳곳에 두었다. 차고 앞에 커다란 마늘 피클 병을 두고, 거

실 피아노 줄 위에 향긋한 훈제 연어가 올라가고, 소파에서 포도주 여섯 병이 자신이 품질

이 더 뛰어나다고 실랑이하는 중에 물안경 쓴 남자가 부엌 싱크대에서 다이빙했다. 아테네

“저는 그냥 이 사진을 보는 것이 좋아요. 아내의 미소를 기억나게 해주거든요.” 사진이 그를

위로하는 겁니다. 아내가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나 슬프지만 그래도 함께 한 수십 년을 생각

하게 하는 것이지요. 그런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치료효과가 있습니다. 자주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은 가끔 회상하는 사람보다 더 행복합니다. 향수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자존감을

강화하며 부정적인 경험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처럼 향수는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감정입니다. 과거를 기억하게 하고, 이를 통해 연대감까지 갖게 합니다. 나이가 들수

록 동창을 찾고 고향친구를 찾는 것은 공통의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시대를 살고

비슷한 옷을 입고 유사한 노래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는 끈끈한 그 무엇이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향수는 많은 사람들의 사회적 행동과 소비행동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응사, 응팔 시

리즈 같은 드라마나 1990년대 유행했던 아이돌 그룹이 재결합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

도 이런 이유입니다.

독일의 유명 사전 랑겐샤이트는 2012년 올해의 청소년 단어로 YOLO를 선정했습니다.

YOLO는 ‘You Only Live Once’의 약자로 인생은 한번 뿐이라는 뜻이죠. 우리가 과거를 추억

하고 향수를 느끼는 것도 모두 되돌아갈 수 없는 단 한번 뿐인 인생 때문입니다. 향수는 참

아름답고 대단한 감정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거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현재 역시 언젠가 돌아보면 참 아름다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 나갈 추억은 전적으로 현재 우리

의 몫입니다. 하루하루 현재를 잘 살아야 추억도 향수도 있는 법입니다.


출처: 추억의 관한 모든 것, / SERICEO 북리뷰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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