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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의존, 김길 본문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우린 거지입니다. - 미국식 억양으로 한국어를… 한국 교포가…
광야는 내가 낮아지는 곳이다.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이 나를 낮추시는 곳이다. 하나님이 나를 고의로 낮추실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하나님조차 나를 잊고 계신 것 같은 시간이 있다. 그러나 실은 그때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다고 보면 된다.
광야에서는 기도하고 세밀하게 응답받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 철저히 무능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구조가 되어 버린다.
죄에 관한 한 사람은 무능력하다. 스스로 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죄에 대한 벌로 스스로를 파괴하거나 죄에 대한 보상으로 무언가를 하거나 기껏해야 서로를 용서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양반이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믿었다면 절개와 지조를 지키며 대의를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삶을 살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예수님을 나타내는 삶에 헌신해야 한다. 새로운 삶에 헌신하지 않으면 뒤로 물러나서 다시 죄 가운데로 가기 쉽다. 그러다가 상태가 더 안좋아져서 스스로에게도 회개가 효력이 없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고난과 헌신은 우리를 참된 회계로 이끌어준다.
죄를 책망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일. - 토레이
아울러 자신을 스스로 용서해야 한다. 자신을 용서하는 일은 자신의 실수를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서 비추어 봄으로써 하나님이 내리신 결론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주시는 나에 대한 결론이 없다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스스로의 정죄감과 기분 나쁜 내적 경험에 계속 시달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죄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에게 말함으로써 묶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죄는 하나님만 용서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가서 먼저 용서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해결된 죄가 공동체와 관계된 문제였을 때는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고 삶이 변화될 때 죄의 고백은 공동체를 유익하게 할 수 있다. 어거스틴의 고백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교회에 유익함이 되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충분히 용서받은 후 영적 거인으로 살아감으로써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삶의 문제가 생겼다면 먼저 관계부터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죽을 수도 있는 현실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원칙을 지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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