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엘리야 때처럼, 오대원 목사의 엘리야와 엘리사 묵상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 영적으로 부유해지고 성장하
려는 함정에 빠진 나머지, 결국 세상과 분리되는 일이 발생하
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월리스 박사는 엘리야와 엘리사에 대해 가르치며, 그리스
도인의 삶은 축적한 자원을 쌓아 두는 삶이 아니라고 거듭 말
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자들에게 전도
하는 일을 희생해야 한다. 우리의 개인적인 말씀과 기도의 삶
을 계발하는 데에만 너무 많은 시간을 써서는 안 된다. 하나
님은 우리가 이기적인 '영적 사치'를 누리라고 영적 훈련을
주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 영성은 안
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이다. 우리
는 마음이 상하고, 고통당하고, 죽어 가는 지들에게 예수님
의 이름으로 나아가서 그들과 함께 앉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모는 필요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게 부어진다. 예
수님은 어떤 사람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더 많이 즐기셨다. 그
럼에도 예수님은 "사람들 사이에 앉으셔서 다른 어떤 선지자
보다 더욱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짊어지셨다" 그분은 배고
픔과 목마름을 참으며, 십자가에서 온 세상의 죄를 자신 위에
짊어지셨다.
여기에 바로 지속적으로 새로워지는 비결, 영적 권위의 비결, 그리고 사역에 있어 능력의 비결이 있다. 우리가 이 비결을 배울 때, 우리가 비록 평범한 일반인일지라도, 세상은 우리가예수님과 함께 있음을 알아볼 것이다.
세상 역사는 성공을 찬양하지만, 성경은 실패자들을 칭찬한다. 성경은 세상적인 성공의 본질적 가치를 전혀 알지 못한다. 그와 반대로, 성경은 성공적인 행위를 알릴 때는 언제나, 그 성공에 포함된 실패를 최대한 상세하게 보여 준다.
하나님의 침묵은 마음의 침묵이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날마
다 시간을 내어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고, 죄에서 돌이키며 마
음속의 시끄러운 방해물들을 제거하여, 그분이 우리에게 하
시려는 모든 말씀을 귀 기울여 들으라고 부르고 계신다. 엘리
야가 했듯이 그분의 말씀 앞에 무릎 꿇고 듣는 것, 이것이 바
로 그분이 찾으시는 침묵이다.
침묵은 동양 예술에서의 여백에 비유해도 좋다. 동양 예술
에서 여백은 빈 것도, 불완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여백은
그 주위를 둘러싼 그림만큼 중요하다. 이런 여백은 영적 세계
에서 '침묵'이라 불린다. 말씀에 있어서 침묵은 집과도 같다.
헨리 나우웬은 크리스천의 삶이란 죽는 것이라고 말한 적
이 있다. 그는 우리가 지금 잘 죽을 수만 있다면, 우리 삶
의 끝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리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 지적했다. 그는 "진짜 죽음, 곧 시간에서부터 영원으로 넘
어가는 과정은 바로 지금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
님은 우리가 점차 세상을 내려놓고, 우리를 압도하려 하는 죄
들을 내려놓아서, 진정으로 자유롭게 되어 그분을 섬길 수 있
도록 도울 만한 사람들을 우리 가까이에 보내 주셨다. 우리는
외국 땅에 있건 고국에서 하나님을 섬기건, 혼자서 선교사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