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를 읽다, 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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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복을 받지 못해도 살아갈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복은 불편함과 관련된 문제이다. 그러나 은혜는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다. 복을 받지 못하면 좀 불편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광야를 지날 때는 복을 구하지 말고 은혜를 구하라. 광야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다.
중년들이 바라보는 인생.
광야에서 필요한 것은 번쩍거리는 황금이 아니라 목마른 갈증을 해갈시켜 줄 생수이다.
광야에서는 성공이 목표가 아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이 목표다. 살아남는 것이 목표다. 광야에서는 살아남기만 해도 성공하는 것이다.
베두인들이 환대를 중요시하는 이유가 있다. 광야는 혼자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 손님으로 맞아들이고 대접을 하는 것이다. 또 내가 언제 그 사람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낯선 사람들을 잘 대접하는 것이다.
베두인 일화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말을 죽였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말도 죽인 마당에 내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소. 어디 한번 들어가 보시오."
이것이 유목민들의 환대 문화이다.
수도원이 처음 생긴 곳은 광야이다.
기도굴
광야에서는 부자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다. 그 누구도 곳간에 쌓아 놓고 사는 사람이 없다. 광야에서는 풍성한 삶을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생존이 목표이다. … 항상 그날그날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채워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말씀의 생수를 부어 주신다.
광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수칙이 있다. 그것은 반드시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들렸다 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아시스에 들려서 충분히 생수를 마시고 쉬었다 가는 사람이 더 빨리 광야를 벗어날 수 있다.
낙타는 자기 짐을 지지 않는다. 주인이 실어 주는 짐을 진다. 우리의 주인은 누구이신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지워 주시는 짐은 지지 않고 우리 짐만 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위해 져야 할 짐이 있다. 내 몫의 십자가,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 내게 주어진 사명,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광야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 대신 이슬이 내린다. 매밀 밤 수억개의 이슬방울들이 내린다. 그것이 사막을 살린다. 사막의 모든 생물들은 이슬을 마시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스라엘 광야에서는 갑자기 홍수가 날 때가 있다. 하늘은 푸르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며,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데 홍수가 난다. 어떻게 된 일일까? 북쪽 갈릴리에서 비가 내리면 그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다 남쪽으로 흘러가 버리고 만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며칠 후에 네게브 광야헤서 홍수가 는 것이다.
LA에서 사과나무
모세는 광야의 사람.